비상계엄 한달 지났지만 정국 여전히 수렁
집권여당의 탄핵 트라우마는 허구
보수 재건 위해서라도 결심해야
한 달이 지나간다.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겠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저질러버린 비상계엄 이후 온 나라가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정국 안정은 요원하다. 똑같은 대통령 탄핵이 있었던 8년 전 겨울과도 달랐다. 2017년 새해 초에는 ‘새로운 시작’ ‘리셋’을 얘기했지만 2025년 우리는 비상계엄에 갇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오늘을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는 여당의 대응이다. 당시엔 여당 내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치권에서는 ‘국정농단’ 반성과 위기감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 야당에만 특검 추천권이 부여된 박근혜·최순실 특검법 발의에 여야 의원 209명이 참여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에는 234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 의원이 128명인 점을 고려하면, 여당 전체 의석의 절반에 가까운 최소 62표가 이탈한 셈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8년 전과 달리 ‘자율투표’ 대신 ‘당론 부결’을 결정했다. 국정농단과도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엄중한 ‘내란’ 등의 혐의에도 윤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한 의원은 300명 국회의원 가운데 가결 정족수였던 200명을 가까스로 넘긴 204명에 불과했다. 여당 의원 108명 가운데 불과 12명 정도가 찬성했다. 이 탓에 특검도, 헌재 판결도 모두 덜그럭거린다.
어렵사리 비상대책위원장을 선출했지만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불안과 걱정을 끼쳐 드린 점,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의 비대위원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권 위원장의 사과에는 비상계엄의 잘잘못 여부나, 1호 당원인 윤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관한 내용은 없다.
이처럼 다른 대응을 두고 흔히들 ‘탄핵 트라우마’ 탓이라고 말한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의힘이 정권을 잃고 적폐 청산 등을 거치며 수사 대상이 되는 등 갖은 고초를 거치면서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소개하며 베스트셀러가 된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일관되게 "트라우마는 없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다름 아니라 자신이 ‘변하지 않겠다’라는 결심을 반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일까. 국민의힘의 다른 대응은 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국민의힘은 현 정부 탄생을 이끈 집권당이라는 포괄적 책임 외에도 비상계엄 당시 소속 의원들의 본회의장 진입을 막는 듯한 이상한 대응이나 명태균 게이트 논란에서 시작된 국민의힘 공천 논란 등이 수사 대상이다. 이미 당의 존립이 위태로워진 상황이다.
이제라도 국민의힘은 ‘미움받을 용기’를 내야 한다.
여당 내 반성과 고민이 사라지면서 극렬 지지층은 위험하게 결집하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겠다며 관저 앞에 몰린 시위대가 그 증거다. 윤 대통령은 시위대를 ‘우리’라고 부르며 서명까지 한 편지를 보내 "더 힘내자"라고 선동했다. 극우 시위대를 이른바 방패로 삼겠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보수층에서는 집회에서만 3명이 숨졌다. 시민과 군이 맞부딪쳤던 비상계엄에서도 피할 수 있었던 유혈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집권 세력이라면, 미래 정치권력을 추구한다면, 지지층의 희생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제라도 윤 대통령과 선을 그어야 한다. 새로 시작할 용기를 찾지 못한다면 보수의 부활은 기약하기 힘들어진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나주석 정치부 차장 gongga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