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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목)

‘최고존엄 옹위’ 최정예 부대? 검찰 출신 대통령의 착각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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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강북 도심에서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주관하고 있다. 대통령실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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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 | 통일외교팀장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 소총으로 무장한 반란군들이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러 왔을 때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인 김오랑 소령이 권총 한자루를 들고 맞섰다. 당시 김 소령은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3공수여단 체포조가 특전사령부 본부에 들이닥치자 유일하게 특전사령관 곁에 남아 싸우다 전사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반란군에 맞설 전투 병력이 특전사 본부에 왜 없었느냐고 답답해했다. 당시 특전사 본부와 3공수여단은 서울 송파구 거여동, 같은 부대 울타리 안에 있었다. 유사시 3공수가 특전사령부를 지켜야 하는데 12·12 당시 3공수 여단장인 최세창 준장이 하나회(전두환이 만든 군내 사조직) 회원이라 반란군 편에 가담했다.



정병주 사령관 후임 특전사령관은 하나회 회원이고 12·12에 가담한 정호용이 맡았다. 이후 전두환 정권 임기 동안 특전사령관은 대부분 하나회 회원이었다.



1981년 3월부터 1982년 11월까지 특전사령관을 지낸 박희도는 12·12 당시 제1공수 여단장으로 반란군을 이끌고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했던 반란의 1등 공신이었다. 혹시라도 자기 같은 군인이 또 등장할까 불안해진 박희도 특전사령관은 1981년 4월 사령관 직할부대인 707특수임무대대를 창설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전두환이 군부를 완전히 장악해 군사반란의 위험이 엷어지자, 이 부대의 성격이 바뀌었다. 전두환 정권은 취약한 정통성을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 개최로 땜질하려고 애썼다. 전두환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준비에 모든 국가 역량을 쏟아부었다. 자연스럽게 707특임대의 주 임무가 사령관 경호에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의 안전을 지키는 테러 방지가 됐다. 707은 특전사 중에서도 최정예 요원으로 꾸려져, ‘특전사 중의 특전사’로 불리게 됐다.



2007년 7~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의한 한국인 피랍 사태가 발생하자 707 대원 150명이 은밀히 군 수송기를 타고 아프간으로 가서 인질 구출 작전을 준비했다고 한다. 인질들이 풀려나면서 구출 작전은 실행되지 않았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대량 응징 보복이 강조되면서 2019년 2월에는 707특임대가 대령이 단장을 맡는 ‘707특수임무단’으로 확대됐다. 이 부대는 평시에는 대테러 임무를 맡고 전시 상황에는 국가전략 차원의 특수 임무를 수행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군의 최정예 자산인 707을 자신의 사적인 무장 집단으로 취급했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12·3 내란사태 당시 윤 대통령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에게 전화해 ”아직 국회 내에 의결 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으니 빨리 국회 안으로 들어가서 의사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라”,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



당시 국회에 투입된 707 군인들의 사진을 보면 문을 강제 개방하는 통로개척 장비인 노루발장도리(빠루), 볼트 커터, 잠금 파괴용 산탄총을 휴대하고 있었다. 707을 비롯해 특전사는 억류된 인질·포로를 구하려고 평소 ‘닫힌 문짝을 부수는’ 통로개척 훈련을 자주 한다. 이들은 국회로 출동하면서 통로개척 장비를 챙겨 왔지만 평소 훈련한 대로 일사불란한 전술 행동을 하지 않았다. 민간인을 제압하라는 지시에 ‘대체 불가’ 특전사 707 부대원으로서 ‘현타’가 왔기 때문이다. 김현태 707특임단장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작전 중에도 우리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이냐는 자괴감 섞인 대화가 오갔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인 윤 대통령은 검사가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유기적 조직체로서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검사동일체’ 원칙에 익숙하다. 그는 군대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내렸다.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국군을, 최고존엄을 총폭탄 정신으로 결사옹위하는 것을 존재 이유로 삼는 휴전선 이북 군대로 헷갈린 것이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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