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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 (수)

그녀 말고 다른 ‘줄리엣’은 상상 어려워... 올리비아 허시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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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에 ‘14세 줄리엣’에 캐스팅

개봉 당시 전 세계에 ‘로미오와 줄리엣’ 신드롬

한국 개봉 당시 암표까지

“갑작스러운 인기, 준비되지 않았었다”

복사기는 제록스, 스테이플러는 호치키스, 줄리엣은 ‘올리비아 핫세’였다. 많은 이들에게 그랬다.

‘세계인의 줄리엣’ 배우 올리비아 허시(Hussey)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떴다고 27일(현지 시각) 유족이 전했다. 허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살아왔다. 부음을 전한 그의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그녀는 예술에 대한 열정, 사랑, 헌신, 동물에 대한 친절로 가득 찬 삶을 살았다”는 글이 게재됐다. 사인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언론들은 그가 2008년 유방암 투병을 했고 지난 2018년 재발했다고 보도했다.

허시는 1951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페라 가수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올리비아 오수나(Osuna)’로 태어났다. 부모 이혼 후 어머니를 따라 런던으로 이주, 연기를 시작하며 어머니 성 ‘허시’로 바꿨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식 발음인 ‘올리비아 핫세’로 첫 소개됐고, 여전히 많은 이가 그렇게 부른다.

허시가 줄리엣 역 오디션을 본 것은 1966년 15세였을 때. 연극에 출연한 그녀를 일찌감치 ‘14세 줄리엣’으로 낙점한 이탈리아 프랭코 제피렐리(Zeffirelli)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연기 경험이 풍부하면서도 줄리엣에 맞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그러면서도 열네 살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 역에는 그녀밖에 없었다.”

조선일보

5일간의 초고속 사랑과 죽음, 14세 줄리엣 역을 맡은 올리비아 허시는 보석 같은 외모와 연기로 대중을 셰익스피어의 문학 세계로 끌어들였다. 사진은 1968년작 ‘로미오와 줄리엣’ 속의 레너드 위팅(왼쪽)과 올리비아 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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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원작 영화 중 가장 흥미로운 영화”(평론가 로저 애버트)로 꼽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1968년 개봉해 큰 화제를 일으켰다. 만남에서 죽음까지 5일 만에 끝난 10대의 사랑을 실제 10대 배우가 연기했고, 심지어 노출 수위도 높았다. 로런스 올리비에의 내레이션으로 문학적 깊이도 있었다. 재정적 위기였던 제작사 파라마운트는 85만달러를 들여 극장에서만 3890만달러를 벌었다. 요즘으로는 대략 2억달러가 넘는다. 허시는 이 영화로 미국 골든글로브 올해의 신인상, 이탈리아 다비드 디 도나텔로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1969년 8월 초 개봉했는데, 당시 8월 5일 자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암표가 극성이다.... 명보극장의 ‘장한몽’의 경우는 150원짜리 2장이 500원씩에, 중앙극장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무려 요금의 두 배인 500원씩에 날개 돋친 듯 거래됐다.’ 주제곡 ‘어 타임 포 어스(A Time For Us)’, “오 로미오, 당신은 왜 로미오인가요” 하는 줄리엣의 대사도 끊임없이 반복됐다.

“로미오는 자신이 없다”며 폴 매커트니가 거절한 배역. 허시보다 한 살 많은 영국 배우 레너드 위팅(Whiting)은 ‘부드러운 우울함(gentle melancholy)’으로 잘 연기했지만, 관심은 ‘줄리엣’에게만 향했다. 미국 배우들은 허시를 만나려고 아예 대서양을 건넜다. 한국에서도 열풍은 이어졌다. 1972년에는 TV에서 방영됐고, 1979년 1월 ‘재개봉’해 다음 달 구정(舊正·설날) 이후까지 관객이 줄을 섰다. 이런 사정은 1978년이 배경인 ‘말죽거리 잔혹사’(감독 유하)에서 그대로 재연됐다. “올리비아 핫세를 닮아 캐스팅됐다”는 한가인은 지금도 ‘한국의 올리비아 핫세’로 불린다.

당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는 ‘책받침 여배우’는 이후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로 바뀌었지만, ‘줄리엣=올리비아 핫세’라는 등식은 깨진 적이 없다.

작품 보는 눈이 빼어난 편은 아니었다. 흥행이 저조했으나 이후 B급 공포 영화의 수작으로 꼽히게 된 ‘블랙 크리스마스’, 애거사 크리스티 원작의 ‘나일강의 죽음’이 비교적 성공작으로 꼽힌다. 1977년 미니시리즈 ‘나사렛 예수’에서 성모 마리아 역을 맡았고, 2003년 ‘마더 테레사’에서 성녀의 모습을 보여줬다.

2018년 회고록 ‘발코니의 소녀’를 냈다. 로미오를 만나려 발코니에 선 그 줄리엣을 의미하지만 책의 내용은 ‘책받침 여신’이 아닌 ‘강렬한 여성’의 그것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수퍼스타가 됐고, 나는 그 상황에 대비하지 못했다”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풀어냈다. 인도 밀교에 빠졌던 경험, 1969년 배우 크리스토퍼 존스를 따라 할리우드로 이주했지만 지속적으로 폭행당했다는 이야기도 썼다. 1969년 8월, 찰스 맨슨 추종자가 로만폴란스키 아내 등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진 LA 저택에서 몇 년이나 산 일도 설명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집에서 살았냐 묻는다. 영국에서는 대부분 집이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다. 나는 그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답했다.”

한때 연인이었던 두 배우, 허시와 위팅은 지난 2022년 공동으로 제작사 파라마운트가 미성년자 성 착취 혐의가 있다며 5억달러의 소송을 냈다. 속아서 영화 속 누드 연기를 강요받았다고 했다. LA카운티 법원은 “두 배우가 주장한 장면이 아동 포르노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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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핫세의 미모를 빼닮은 딸 인디아 아이슬리(31)가 영화 속 배역으로 분장한 모습.


두 번 이혼하고 세 번 결혼했다. 1970년대에는 배우 겸 가수 딘 마틴의 아들인 딘 폴 마틴과 결혼해 아들 알렉스를 얻었고, 1980년대에는 일본 가수 아키라 후세와 결혼해 아들 맥스를 낳았다. 록 가수 데이비드 글렌 아이슬리와는 35년째 살아 왔고 둘 사이에는 현재 배우로 활동하는 딸 인디아가 있다.

1968년 ‘로미오와 줄리엣’ 미국 개봉 당시 포스터에는 이런 홍보 문구가 적혀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러브 스토리(no ordinary love story)’. 그녀 인생도 평범할 수는 없었다.

[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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