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첫 번째 탄핵소추안이 부결되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12월의 둘째 주, 시민들에게 위로를 준 것은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이었다. 한강은 질문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자기 안의 울분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던 이들의 마음에 형상을 부여해 준 말이었다.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가 흔들려서만도, 민주주의가 모욕당해서만도 아니다. 분노하면서도 어리둥절하고, 현실감각이 자꾸 둔해지는 것은, 마치 중세 시대의 흑사병처럼 이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국가의 폭력이 갑작스럽고 일방적으로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이런 폭력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가?
그 폭력은 사실 사라진 적이 없었다. 한강은 또 묻는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수많은 시민들이 이 질문을 던지며 과거의 폭력을 소환했다. 1980년 광주, 그리고 그 이전과 이후의 국가 폭력과 그 생존자들로부터 교훈을 얻기 시작했다. 얄궂은 역사는 반복되지만, 반복되기에 비로소 생존자들의 마음은 이어진다. 그렇게 이태원은 팽목항과 이어졌고, 2024년은 1980년과 이어졌다. 우리는 서로의 고통과 비통을 이해해버렸다.
역사상 세 번째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 한강철교를 건너고 있었다. 맑디맑은 토요일 오후의 한강은 금빛으로 빛났다. 늘 그렇듯 지친 승객들은 잠시나마 고개를 들고 한강의 윤슬에 마음을 빼앗긴 듯했다. 햇살 가득한 날의 한강은 인간에게 기적과도 같은 위로를 준다. 그 위로는 참으로 공적이고 보편적이어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방글라데시의 국가(國歌)가 된 시 ‘나의 금빛 벵골’에서 “나의 금빛 벵골,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원한 그대의 하늘, 바람에 내 마음 피리 되어 노래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윤리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이 시를 인용하면서 자연에 대한 경탄이 국가와 동료 시민에 대한 사랑을 고취한다고 보았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함께 금빛 한강을 응시하던 이들에게 국가는, 동료 시민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이들은 자유를 외친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타인의 자유를 지킨다. 어떤 이들은 안정이 먼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침묵함으로써 타인을 안심시켜왔다. 어떤 이들은 애국자를 자임한다. 그러나 분명히 말한다. 우리 모두가 이 나라를 사랑한다. 우리를 위로하는 아름다운 자연과 동료 시민들로 표상되는 나라, 사랑하는 이들과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땅과 물과 바람으로 구성된 이 나라를 사랑한다. 우리가 다 같은 모습으로 사랑할 수는 없다. 우리는 각자의 모습으로 나 자신과, 동료 시민과, 이 나라를 사랑한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는 것은 지금의 국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대리석 속에 있는 천사를 앞서 본 미켈란젤로처럼, 그 안에서 더 사랑스러운 나라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세대와 세대가 모여 왕조의 유적 앞에서 비폭력으로 저마다의 민주주의를 외치는 나라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비록 그 분열과 대립에 마음이 찢기고 비통할지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한강의 기적은 기적이 아니었다. 한국의 역사와 역량을 알아보지 못한 서구의 편견이었을 뿐이다. 엄혹한 날들 가운데 한강의 기적이 시민들에게 위로를 주었다고 생각한 순간, 금빛 한강은 면면히 흐르면서 늘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있었음을 또한 깨달았다. 기적은 다른 게 아니다. 과거가 현재를, 죽은 자가 산 자를 위로할 수 있음이 기적이다.
물이 지극하면 생명을 기르는 강을 이루고, 마음이 지극하면 인간에 이른다. 소년 같은 새해가 온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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