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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 (수)

착륙 직전 아들에 “유언해야 하나”…마지막이 된 엄마의 카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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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사연들

경향신문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청사에 마련된 가족 대기실에서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위쪽 사진). 가족들이 사고 상황판을 살펴보고 있다(가운데 사진).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맨 앞)와 최형석 애경 총괄부회장 등이 대기실을 찾아 사과하고 있다. 무안 |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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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팔순 기념 여행 일가족 9명, 60대 포함 자매 6명
농한기 맞아 모처럼 해외여행 떠난 농촌 주민이 상당수
암 호전돼 나들이 간 엄마 마중나온 남매 “믿을 수 없어”

“태국 방콕 여행에서 돌아오는 어머니와 이모들을 마중 나왔는데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29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청사 앞에서 A씨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가족들은 방콕에서 돌아오는 어머니와 이모들을 마중하기 위해 이날 오전 일찍 무안공항을 찾았다고 말했다.

A씨는 “태국에서 돌아오는 어머니와 이모를 태워 가기 위해 공항을 찾았는데 연락이 없다”며 “나이 드신 어머니와 이모 5명이 한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3박5일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A씨의 60대 어머니와 이모들은 전남의 한 농촌 지역에 살고 있다. 자매들은 한 해 농사일이 끝나 한가해지자 모처럼 가족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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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사는 20대 B씨는 사고 직전 여객기 안에 있던 어머니와 카톡(사진)을 주고받았다. 어머니는 오전 9시 “새가 날개에 껴서 착륙 못하는 중”이라며 상황을 전했다. “언제부터 그랬느냐”고 아들이 되묻자 어머니는 사고를 직감한 듯 “방금, 유언해야 하나”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아들이 곧바로 “어쩐대”라며 걱정하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어머니는 끝내 보지 않았다. 오전 9시37분 “왜 전화가 안 되냐”는 메시지를 어머니에게 다시 보낸 아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전남 영광군에 따르면 군남면에 거주하는 C씨(80) 일가족 9명도 사고 여객기에 탑승했다. C씨는 181명 탑승자 중 최고령자였다. 이들 가족은 C씨의 팔순을 기념해 함께 태국 방콕 여행길에 올랐다가 귀국도중 변을 당했다.

무안공항에서 추락한 제주항공 7C 2216편 탑승객 중에는 방콕으로 여행을 떠난 전남·광주 지역 주민들이 많았다. 제주항공은 지난 8일부터 무안공항에서 출발하는 태국 방콕, 일본 나가사키, 대만 타이베이,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정기편 운항에 들어갔다. 태국 방콕은 화·수·토·일 등 일주일에 4번 오가고 있다.

제주항공은 2018년 4월 무안공항에 처음 취항했으나 해외 정기편 운항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참사는 제주항공 여객기가 무안공항에 정기 취항한 지 21일째에 발생했다. 가까운 공항에 동남아시아 관광지로 가는 정기편이 생기면서 한 해 농사를 마치고 농한기에 접어든 농촌 지역 주민들의 이용이 많았다. 장흥에 사는 60대 농민 4명도 방콕으로 여행을 다녀오다 사고를 당했다.

“아들~ 엄마 아는 언니가 제주에서 귤 보낸 거 문 앞에 도착했대.”

22·15세인 김모씨 남매가 어머니와 나눈 마지막 대화다. 어머니는 친구들과 방콕으로 여행을 간 지 이틀째인 지난 27일 이 문자메시지를 아들에게 보냈다. 이들 가족도 광주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앳된 얼굴의 남매는 서로의 손을 붙잡은 채 공항에서 사고 소식이 흘러나오는 TV를 줄곧 응시했다. 공항 청사 1층은 유가족들의 절규와 울음소리로 가득했고, 청사 앞 주차장에는 벌써부터 운구차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남매의 어머니는 50대 초반으로 위암으로 1년 넘게 투병생활을 했다가 최근 건강 상태가 호전되면서 이번 여행을 계획했다. 남매는 “어머니가 오랜 기간 투병생활로 고생하셨고, 여행사에서 ‘크리스마스 방콕 여행 패키지’가 출시돼 모처럼 친구들과 방콕으로 놀러가신 것”이라면서 “여행 중에도 틈틈이 안부 등 연락을 나눴는데, 갑작스럽게 들려온 사고 소식이 믿기질 않는다”고 말했다.

한 70대 부부는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공항을 찾았다. 사고 비행기에는 아들과 며느리, 어린 손자 2명 등 4명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부부는 “아이고, 우리 애들 불쌍해서 어떡해…”라고 절규했다. 며느리와 손자 2명이 아들과 함께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는 사실도 공항 도착 직후 사돈의 전화를 받고서 뒤늦게 알게 됐다고 한다.

해남군에 사는 50대 주민 3명도 방콕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 여객기에 탑승했다 사고를 당했다. 수능을 마친 전남 지역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도 사고 여객기에 탄 것으로 확인됐다.

전남교육청은 이날 오후 3시 기준 전남 교직원 5명과 학생 12명이 사고 여객기에 탑승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강현석·고귀한·강정의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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