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중국 언론에 재밌는 기사가 하나 실렸다. 올해 1~11월 중국 반도체 수출금액이 사상 최초로 1조위안(약 197조원)을 돌파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달 초 미국 상무부가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대중 수출을 금지하는 추가 제재안을 발표하고 이에 중국이 곧바로 갈륨, 게르마늄, 안티몬 등 주요 광물의 미국 수출 금지를 발표한 이후 나온 뉴스라 더 눈에 띄었다.
/로이터=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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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기술전쟁이 갈수록 격화하는 가운데, 중국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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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수출 1조위안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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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해관총서는 올해 1~11월 중국 기계전자 제품 수출금액이 작년 대비 8.4% 증가한 13조7000억위안(약 2700조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전체 수출액의 59.5%를 차지하는 규모로 중국 수출이 의류·장난감·가구 등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반도체 수출은 20.3% 증가한 1조300억위안(약 203조원)으로 1~11월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언론은 반도체 수출 1조위안 돌파는 중국이 전 세계 반도체 산업 사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경쟁력 강화를 뜻한다고 자화자찬하고 나섰다.
중국 반도체 수출량은 2015년 1828억개에서 2021년 3107억개까지 증가했으나 2022~2023년에는 다소 줄었다. 올해 1~11월 수출량은 2717억개, 수출금액은 달러 기준 1447억달러로 올해 중국의 반도체 수출금액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또 개당 평균 수출 단가가 2021년 0.495달러에서 2024년 0.53달러로 약 7% 상승하는 등 고급화 추세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중국 반도체 수출 추이/그래픽=임종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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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중국 반도체시장조사업체 IC뷰는 중국의 주요 반도체 수출품목 중 하나는 메모리 반도체로 중국 업체들이 고객 수요에 맞춰 다양한 규격과 성능의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 등 메모리 제조사들는 저가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로 시장 점유율을 야금야금 넓혀가고 있다.
특히 글로벌 투자은행 노무라가 2024년말 CXMT의 월 생산능력이 20만장으로 증가해, 글로벌 생산능력의 11%에 달할 것으로 전망할 정도로 중국 업체들의 확장세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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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낮은 가격에 대만 팹리스 업체 공략하는 중국 파운드리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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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그래픽=김다나 |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거침없는 진격이 화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3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중국 SMIC가 점유율 6%로 3위, 화홍반도체가 2.2%로 6위, 넥스칩(0.9%)이 10위를 차지하는 등 상위 10위권에 중국 업체가 3곳 포함됐다. 한국은 삼성전자가 점유율 9.3%로 2위를 차지했으며 대만은 TSMC(1위), UMC(4위), 뱅가드(8위), 파워칩(9위) 등 4곳이 포함됐다.
올해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의 가장 큰 변화는 TSMC가 점유율을 64.9%로 확대하며 삼성(9.3%)과의 격차를 한층 더 벌린 것과 SMIC의 3위 진격이다. SMIC는 3분기 점유율 6%로 UMC와 글로벌 파운드리를 제치고 3위를 굳히면서 삼성과의 격차를 작년 4분기 6.1%포인트에서 3.3%포인트로 축소했다.
SMIC, 화홍반도체, 넥스칩 등 중국 파운드리 업체는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상 성숙(레거시) 공정을 위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건 대만 파운드리 업체다.
지난 9일 대만 경제일보에는 중국 파운드리 업체들이 놀고 있는 생산라인을 가동하기 위해 대만 팹리스(반도체설계) 업체들로부터 대만 파운드리 업체 대비 최대 40% 낮은 단가에 주문을 받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중국 업체들이 12인치 파운드리 가격은 40/45나노 위주로 최대 40%까지, 3분기 연속 가격이 하락한 8인치 파운드리 가격은 20~30% 낮추고 있다는 내용이다.
대만 팹리스업체들이 중국으로 주문을 돌리면서 UMC, 뱅가드(VIS) 등 대만 파운드리 업체들은 공장 가동률이 70% 이하로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파운드리업체는 주로 전력관리반도체(PMIC),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드라이버 IC 등 기술이 안정화돼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레거시 반도체(범용 반도체)를 공략하고 있다. 올해 전 세계에서 신규 가동되는 반도체 공장 42개 중 18개가 중국에 있을 정도로 중국은 공격적으로 반도체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는데, 성숙 공정부터 시장 점유율을 가져가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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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중국 반도체 생산능력이 전 세계의 3분의 1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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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반도체 생산능력 전망/사진=SEM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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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전 세계 반도체 팹 전망'(World Fab Forecast)을 발표하며 전 세계 반도체 생산능력이 올해 6%, 내년 7% 성장하며 2025년 8인치(200mm) 웨이퍼 기준 월 3370만장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지역 별로는 중국 반도체 생산능력이 올해 15%, 내년 14% 성장하며 2025년 8인치 웨이퍼 기준 월 1010만장으로 증가해 전 세계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점쳤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내년 말 중국 파운드리업체의 레거시 공정 생산능력이 상위 10위권 업체의 2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체 반도체 수요에서 28나노이상 성숙공정이 약 4분의 3을 차지하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7나노이하 첨단반도체 대신 성숙공정 위주로 점유율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산 범용 반도체를 대상으로 통상법 301조에 따라 불공정 무역 행위 조사를 결정하는 등 범용 반도체에 대한 제재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다. 하지만 범용 반도체는 중국 자체 반도체 생산 장비로도 생산이 가능해 제재의 효율성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2025년에는 더 많은, 값싼 중국산 반도체가 전 세계로 퍼져갈 것 같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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