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21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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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상식에 맞는 판단만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24살 이나래씨)
“재판관님들도 국민이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일 거잖아요. 잘 결정하시리라 믿어요.”(65살 김아무개씨)
“빨리 탄핵이 되면 좋겠어요.”(14살 이준호군)
끝이 보이지 않는 행진 인파 사이에서 헌법재판소를 바라보며 각기 다른 일상을 살아 온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기대와 바람을 전했다. “탄핵” “파면”을 외치는 구호가 케이팝과 함께 한겨울 서울의 찬공기를 갈랐다. 교통 체증에 갇힌 버스를 타고 있던 시민들은 창을 열고 손을 흔들었고, 길을 걷던 시민은 멈춰서서 사진을 찍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21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범시민대행진)에 시민 30만명(주최 쪽 추산)이 모여들었다. 국회 앞에서 탄핵안 가결을 이뤄낸 시민들은 1주일만에 서울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걸으며 윤대통령의 조속한 탄핵과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탄핵안이 가결된 기쁨도 잠시, 지난 한 주 이어진 윤대통령과 여당,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모습에 대한 분노가 거셌다. 다만 다채로운 깃발을 들고 새참을 나누고, 각자 만든 손팻말을 흔들며 “유쾌하게 이기겠다”는 마음만은 잊지 않았다.
시민들이 21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김가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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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진에 앞선 집회 무대에 오른 강솔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윤대통령은 담화와 변호사 기자회견을 통해 끊임없이 갈라치기를 시전하고 있다”며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은 더이상 책임회피를 하지 말고 내란 특별법 공포 와 헌법재판관 지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대통령이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와 압수수색, 헌법재판소의 문서 송달에 전부 불응하고 있는 가운데, 한 대행은 이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내란사태에 대해 국민의힘의 사과 또한 없었다.
행진에 참여한 김아무개(52)씨는 “탄핵안 가결이 된 상황에서도 수사에 불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아 화가 더 난다”고 했다. 박아무개(53)씨는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의 벌인 일에 사과는커녕 아직도 이해득실만 따지는 국민의힘에도 화가 난다”며 “이 기회에 보수 세력이 재정비해서 민주주의를 함께 지켜주길 바란다”고 했다.
다양한 모습으로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이날도 간식과 먹거리, 방한용품, 공간을 나누며 거리에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집회 현장에는 여지없이 ‘방구석 베짱이 연합’, ‘후딱 탄핵하고 잠이나 자고 싶은 시민 연합’ 등 다채로운 깃발이 나부꼈다. ‘마스크 무료나눔’ 손팻말을 든 김아무개(25)씨는 “춥고 독감이 유행하는 데다 얼굴을 가리고 싶은 젊은 여성들에게도 필요할 것 같아 마스크를 나누러 나왔다”며 “윤 대통령이 서둘러 탄핵 돼 민주주의가 바로잡혔으며 좋겠다”고 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교사들은 ‘무지개떡’을 나눴고, 산타 복장을 한 청년 노동자들은 과자가 담긴 선물 꾸러미를 전했다. 이태원 유가족들은 적선현대빌딩 1층에 있는 추모공간 ‘별들의집’을 이날 영유아와 보호자들의 쉼터로 꾸몄다.
시민들이 21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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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자리에서 내란의 밤 느낀 공포, 그 앞에 함께 싸운 시민 모습을 떠올리며 ‘탄핵 이후’에도 이어져야 할 민주주의 모습을 생각했다는 이들도 많았다. 한국옵티컬 농성장에서 고공 농성을 했던 소현숙씨는 “계엄선포를 보고 당장 끌려내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고 무서웠다”며 “윤석열을 탄핵하는 건 모든 노동자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장애인 위유진씨도 집회 무대에 올라 “국가에 의한 갑작스런 폭력은 중증 장애여성인 나에게 커다란 위협이었다. 그날 밤 망설임 없이 국회 앞 달려간 시민들 덕분에 나는 지금 여러분과 함께 여기 살아있다”며 “탄핵은 경유지이지 종착지가 아니다. 모든 존재가 지워지지 않는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싸우자”고 했다.
시민들이 21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김가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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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 대열은 저녁 6시께 헌재를 지나 명동에 도착했다. 어느덧 어둑해진 거리에서 집회 참여 시민과 거리를 지나가던 시민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응원봉이나 손팻말을 준비하지 못한 채 행진 대열을 만난 시민들은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파이팅해야지’ 등 케이팝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며 윤대통령의 탄핵, 그를 통한 다채로운 민주주의 회복을 함께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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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기자 ren@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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