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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국내 첫 코미디 영화 ‘멍텅구리’, 조선의 戀人으로 떠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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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1월 조선극장, 우미관 개봉, 당대 제일 희극 배우 이원규가 주역

조선일보

1926년 1월 경성 우미관과 조선극장에서 개봉한 한국 최초의 코미디 영화 '멍텅구리' 스틸 사진. 왼쪽부터 주인공 최멍텅을 연기한 당대 최고 희극배우 이원규, 기생출신 여배우 김소진, 윤바람 역이다. 조선일보 1925년12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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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2월 28일 오후 경성 종로일대에 구름떼 같은 인파가 몰렸다. 경찰까지 출동해 정리할 정도였다. 군중들은 중앙이발관 안쪽을 힐끗거렸다.

‘조선영화연구회에서 본보에 연재되는 멍텅구리가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다가 마침 밖으로 지나가는 옥매가 체경(體鏡,거울)에 비쳐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체경을 향하여 옥매를 쫓아간다고 날뛰다가 체경을 깨뜨리고 이발관 주인과 체경값 문제로 다투는 장면을 배우들이 전기 중앙이발관에서 활동사진으로 박았는데 그것을 구경하기 위하여 그와 같이 군중이 모여들어서….’(멍텅구리 보려고 종로 일대가 인산인해, 조선일보 1925년12월30일)

장안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네컷 만화 ‘멍텅구리’를 영화로 찍는 촬영 때문에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촬영장면은 ‘멍텅구리 헛물켜기’ 3회(1924년10월15일자,만화보기 https://archive.chosun.com/cartoon/mtguri/mt2_content_wide.jsp?tid=mt110003001&tno=A)에 실린 내용이었다.

◇최고 희극배우 이원규가 주역맡아

영화 ‘멍텅구리’는 1924년 10월13일 연재를 시작한 국내 신문 최초의 네컷 연재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를 줄거리로 삼았다. 1924년 10월13일 탄생한 국내 신문 최초의 네컷 연재만화 ‘멍텅구리’는 독립운동가 신석우가 1924년 9월 조선일보를 인수해 이상재 사장을 추대하며 야심차게 내놓은 ‘혁신 조선일보’의 기획이다. 충청도 부농 아들인 키다리 최멍텅과 그 친구인 땅딸보 윤바람이 기생 신옥매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에피소드가 중심이다. 코미디 형식이기 때문에 영화 ‘멍텅구리’는 한국 최초의 코미디 영화로 손꼽힌다. 만화를 영화화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영화 '멍텅구리'가 개봉한 1926년 1월10일 조선일보에 공개된 영화 스틸사진. 모두 9점이다. 최멍텅이 옥매가 탄 인력거에 충돌해 쓰러지는 장면부터 친구 윤바람에게 옥매를 만나게 해달라고 무릎꿇고 애원하는 장면에 이어 소망이 이뤄지지않자 한강에 뛰어내리는 자살 소동을 벌이는 장면이다.필름이 남아있지 않기때문에 실제 영화 장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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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촬영기사 이필우 감독

‘멍텅구리’는 조선 민중의 환영을 받은 대중만화였다. ‘거칠고 슬픈 조선 땅에 무슨 웃음이 있고 무슨 즐거움이 있겠느냐?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조선 사람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조선일보에 연재되는 멍텅구리’라며 ‘조선의 멍텅구리는 그것이 몇쪽의 그림일 망정 확실히 조선 사람의 그리운 연인(戀人)이라 하였다’(멍텅구리께서 활동사진으로 나오신다, 조선일보 1925년12월31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신문 연재 1년여만에 영화화된 ‘멍텅구리’는 한국 최초의 촬영기사로 알려진 이필우(1899~1979)가 감독을 맡았다. 일본에서 촬영, 현상 기술을 배운 이필우는 1920년초 귀국, 이기세 감독과 함께 ‘지기’(知己)를 촬영하면서 한국인 첫 촬영기사가 됐다. 1925년 반도 키네마를 세워 ‘멍텅구리’ 제작, 각색, 감독을 맡았다. 당대 최고 희극배우인 이원규가 주인공 최멍텅을 연기했고, 여배우 김소진이 기생 옥매로 출연했다. 김소진은 조선권번 기생 출신으로 승무와 신파극에 뛰어났다고 한다.

조선일보

한량 최멍텅이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다가 옥매가 지나가는 모습이 거울에 비치자 그속에 뛰어들어 거울을 깨뜨리는 소동을 그렸다. 종로 거리에서 이 장면을 촬영하는 현장에 구경꾼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어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조선일보 1924년10월15일자


◇조선극장, 우미관서 개봉

‘멍텅구리’는 1926년1월10~15일 경성의 조선극장과 우미관에서 하루 2회 상영했다. 최멍텅이 기생 옥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줄다리기하는 무성영화다. 일제시대 영화 필름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멍텅구리’ 역시 내용을 완벽히 복원하기 어렵다. 하지만 조선일보(1926년1월10일자)에 공개된 스틸사진(9장)을 보면 만화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최멍텅은 옥매를 향한 사랑을 이룰 수없자 한강에 뛰어들려다가 옥매가 탄 인력거와 충돌하는 장면이다. 대구, 원산, 군산 등 전국을 순회하며 상영했다.

1932년 설립된 경성키네마가 이북월 감독과 배우 윤봉춘을 내세워 ‘멍텅구리’ 속편을 제작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제작을 마치고 개봉한 것같진 않지만 ‘멍텅구리’가 누린 인기를 알 수있다.

◇노수현, 이상범이 만화 그려

‘멍텅구리’는 미국 유학파 언론인 김동성(발행인)이 기획하고, 당시 신문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상협(편집고문)과 민세 안재홍(주필)이 스토리 구성을 맡았다. 일종의 집단 창작 시스템이었다. 산수화 대가인 심전(心田) 안중식의 양대 제자인 심산 노수현과 청전 이상범이 만화를 그렸다. 노수현과 이상범은 한국화를 정통으로 배운 예술인들이었다. 노수현은 광복 후 서울대 미대 교수를 지내며 후학을 길렀고, 이상범 역시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 작가로 떠올랐다.

‘멍텅구리’는 1924년 10월13일 시작, 1927년 8월20일까지 연재됐고, 1933년2월 26일 재등장, 그해 8월2일까지 연재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만화는 모두 744편이다. ‘헛물켜기’ ‘연애생활’ ‘자작자급’ ‘가정생활’, ‘세계일주, ‘꺼떡대기’, ‘가난사리(살이)’, ‘사회사업’, ‘학창생활’, ‘또나왔소’ ‘모던 생활’ ‘기자생활’ 등 시리즈 12편이다.

<멍텅구리 만화 보러가기 https://archive.chosun.com/cartoon/toon_comics.html>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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