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사태 핵심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재적 의원 300명 중 204명의 찬성으로 가결된 뒤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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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봉 | 법조팀장
2024년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을 메운 것은 응원봉이었다. 콘서트 등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기 위해 만든 도구다. 이날 여의도를 드론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응원봉이 내뿜는 다양한 빛이 거리를 수놓았다. 그 찬란한 빛깔이 ‘비상계엄’이라는 어마어마한 구시대의 유물을 이겼다.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은 국회에서 가결됐고, 같은 날 저녁 7시24분부터 윤 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박탈됐다.
응원봉에는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아낀다는 건 파괴를 막는 일이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을 다치거나 상하지 않게 하는 행위다. 손해를 보는 일이기도 하다. 시간과 수고와 돈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은 결국 나의 일부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끼는 마음이 힘을 가질 때는 ‘함께’일 때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끼는 것을 홀로 소유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응원봉은 함께라는 전제에서 만들어졌다. 애초 응원이라는 것은 여럿이 해야 마음이 상대에게 더 크게 전달된다. 그러니 응원봉을 드는 사람은 더 많은 사람이 같은 응원봉을 들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함께하기 위해서 독점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욕심뿐이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된 훈련을 마다치 않아온 707특수임무단과 제1공수특전여단에 국민을 상대하라고 명령했다. 홀로 전쟁터에 남아도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져온 정예 군인이 우리 국회에 투입됐을 때 느꼈을 허탈함과 절망감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입만 열면 국가 안보를 강조했던 그는 나라를 지키는 기틀인 군인을 아끼기는커녕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한 소모품으로 여겼다.
그는 홀로 자유를 독점하기 위해 시민의 자유를 빼앗으려 했다. 시민이 당연하게 누려야 할 언론의 자유와 정치적 결사·집회·시위의 자유를 간단히 짓밟아도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군대로 국회와 언론사를 장악하고 파업하는 노동자와 의사를 처단하면서 오직 자신만 자유로운 세상을 꿈꿨다. 그가 모든 연설에서 빠짐없이 강조하고 반복했던 자유는 헌법이 지키려는 가치가 아니라 아무 통제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에 불과했다.
결국 자신만 아끼는 마음은 타인을 아끼는 마음에 무너졌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12월3일 국회 앞을 지켰던 시민은 함께 굳건했고 단단했다. 반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명령을 받았던 군인은 망설였고 주저했다. 주어진 명령이 국가와 우리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닌 윤 대통령 혼자만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알아차리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 공동체를 아끼는 마음을 드러내는 상징은 촛불이었다. 미군 궤도차량이 2002년 6월13일 경기도 양주시에서 두명의 중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에 분노해 그해 11월30일 서울 광화문에서 1만개의 촛불이 켜진 뒤로 22년 동안 촛불은 위기 때마다 거리를 메웠다. 이번에는 응원봉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또 다음에는 어떤 신문물이 등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건 상관없다. 변치 않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우리 공동체를,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함께하는 마음을 이기는 권력이란 없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되자 담화에서 “지금 잠시 멈춰 서지만, 지난 2년 반 국민과 함께 걸어온 미래를 향한 여정은 결코 멈춰 서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년 반 그는 혼자 걸었다. 심지어 자신이 직접 고르고 임명한 국무위원들마저 반대하는 비상계엄을 고집한 이가 ‘함께’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은 뻔뻔한 일이다. 이제 제발 포기하고 멈추기를 바란다. 그래야 국민들의 미래를 향한 여정이 멈춰 서지 않을 것이다.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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