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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4무’ 대통령의 웃픈 광대극 [문정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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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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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현직 대통령이 보여준 광란의 널뛰기 행보에 현기증이 나다 못해 분노가 치민다. 12월3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가 바로 뒤이어 해제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더니 지난 12일에는 비상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였다고 주장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천명했다. 이 ‘웃픈’ 광대극은 결국 탄핵안 국회 통과로 끝났다. 직무 정지된 그의 행보를 복기해보면 사필귀정이다.



첫째, 그는 ‘무도’한 대통령이었다. 무도라 함은 원칙, 도리, 가치에 어긋나는 막돼먹은 행동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와 국제 연대는 윤석열의 전매특허였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유민주주의의 적이었다. “반국가 세력의 대한민국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미명 아래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자유민주적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 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아래서 국가는 개인의 단순한 집합으로 시민의 이익과 선호성을 반영하는 중립적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대통령은 국민의 대리인, 머슴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고 자기에게 적대적인 이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매도하기에 급급했다. 이는 무도의 극치다. 윤석열이 그렇게 개탄하는 거대 야당의 탄핵과 입법 폭주, 예산 농단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이를 이유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대 세력을 억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도리를 저버리는 행위다.



둘째, 윤석열은 ‘무법’ 대통령이었다. 전시·사변이라는 계엄 선포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는데도 계엄을 강행했다. 게다가 군을 동원해 국회의 헌법적 권한을 무력화하고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군 투입과 전산 서버 정보 탈취를 시도한 것은 명백한 위법·위헌 행위다. 국회의장, 여·야당 대표, 비판적 정치인, 언론인, 전직 대법관, 그리고 야당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현직 판사를 계엄 선포와 동시에 체포 대상에 포함한 것은 법치주의와 헌법상 권력분립 원리의 중대한 훼손이다. 검찰총장까지 지낸 법조인의 그런 행보는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셋째, 그는 ‘무지’한 대통령이었다. 정책 현안에 대한 객관적 팩트도 약하고 가짜뉴스를 믿고 유포하는 데 익숙한 인물이었다. 네번째 담화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국회에 동원된 병력이 소규모라는 진술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국회 특활비 예산은 오래전부터 줄었는데 늘어났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체코 원전 수출 지원 예산이 90% 삭감되었다는 잘못된 주장도 폈다. 예비비가 줄어 재해 대응이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며, 아동 돌봄 수당의 일방적인 삭감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윤석열은 계엄령 발동 목적이 “국민들에게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기 위한 ‘경고성 계엄’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를 반증하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자신은 4차 담화에서 “국회를 막지 말라 했다”고 강변하지만, 계엄 선포 이후 여섯번이나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다 잡아들여. 계엄법 위반이니까 체포해”라고 직접 지시를 내렸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와 폭거로 국정이 마비되고 사회질서가 교란되어, 행정과 사법의 정상적인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주장도, 한국이 “간첩 천국, 마약 소굴, 조폭 나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 또한 객관적 근거 없는 선동적 가짜뉴스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무능’한 대통령이었다. 정치력과 실행력이 제로라는 뜻이다. 정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예술이다. 그러나 그는 가능한 것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뺄셈의 정치를 해왔다. 검찰 특유의 상명하복과 위계질서에 익숙한 그에게 경청의 미덕은 물론 갈등 조정과 해소 능력은 전혀 없었다. 민주주의보다 권위주의가 더 편해 보이는 지도자였다. 실행력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번 계엄 사태만 해도 지휘 통제에 현격한 하자를 보이지 않았는가. 애먼 군과 경찰의 유능한 인재들을 내란의 공범자로 만들어 패가망신의 길을 가게 했다. 이런 지도자에게 나라를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2016년 박근혜 탄핵 시 ‘혼용무도’(昏庸無道)라는 사자성어가 유행했다. ‘어리석고 나약한 군주의 실정으로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윤석열에게는 어리석은 군주 ‘혼군’과 포악한 군주 ‘폭군’이 겹쳐 보인다. 탄핵안 국회 통과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제 헌법재판소에서 내란 수괴의 최후가 어떻게 되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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