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디’(또는 산미)라는 순한글 글자가 먹으로 굽 부분에 쓰여진 월지 출토 16세기 백자 조각. 산디는 사람의 이름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노형석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7세기 신라왕실이 경주 왕성 옆에 팠던 유원지 연못 ‘월지’(일명 안압지·국가사적)에서 옛 글자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왔다. 지난 1975~76년 월지와 옆 동궁 유적 발굴 조사 때 나왔던 신라의 건축용 금속 장식물과 조선 초기(15~16세기) 백자 조각들을 40여년 만에 분석한 결과다. 신라와 조선의 선조들이 유물들 표면에 끌로 새기거나 먹붓으로 쓴 한자와 순한글 글자들이 확인된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1일 이런 내용을 담은 월지 출토 소장품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백자 조각에서 조선 초기 월지 연못에 제사를 지낸 근거로 추정되는 한자 ‘龍王’(용왕)과 ‘졔쥬’(제사 지내는 주체), ‘산디’ 따위의 당대 순한글 먹글씨들이 처음 확인됐다. 통일신라 시대의 건축용 금속 장식에서는 당시 연못 옆 왕실 태자의 거처인 ‘동궁’의 건립 공사에 관여한 장인들 이름으로 추정되는 한자들이 판독됐다.
‘龍王’(용왕) 글자를 굽 부분에 먹으로 쓴 경주 월지 출토 16세기 백자 조각들. 제사용기로 추정된다. 16세기까지 월지 일대에서 용왕과 관련된 의례가 치러졌다는 것을 실증하는 유물들이다. 맨 왼쪽 백자 조각의 용왕 글자는 부적의 글자처럼 획이 크게 변형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노형석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970년대 월지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8천여점의 조선 자기편들 가운데 먹글씨가 드러난 건 대략 130여점. 대체로 16세기 제작된 백자들인데, 가마에서 포개어 구울 때 유약이 묻지 않은 굽 부분에 쓴 것들이다. 한자 먹글씨의 내용은 ‘용왕’(龍王), ‘기계요’(杞溪窯), ‘기’(器), ‘개석’(介石), ‘십’(十) 등으로 다양하다. ‘졔쥬’나 ‘산디’처럼 순한글 내용도 확인된다.
특히 ‘용왕’(龍王)이란 먹글자가 쓰인 백자 조각들이 여러점 확인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백자들은 명백한 제사용기들로 적어도 16세기까지 월지에서 용왕에 얽힌 의례가 치러졌음을 입증하는 근거다. 제사를 지낸 주인을 뜻하는 ‘졔쥬’(祭主)라는 한글 먹글씨가 보이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義壹舍知’(의일사지)란 글자가 새겨진 신라시대의 가옥장식용 금동판의 세부. 신라 조정의 13번째 관등 ‘사지’의 자리를 맡은 의일이란 관료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원래 1970년대 발굴 직후에는 황수영 박사 등 학계 전문가들이 ‘義壹金知’(의일금지)가 새겨진 것으로 잘못 판독했으나 최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엑스선 촬영을 통해 바로잡았다. 노형석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학계에서는 통일신라시대까지 월지에서 용왕 제사를 지냈다고 보는 게 그간 통설로 인정되어 왔다. 월지에서 ‘신심용왕’(辛審龍王)이란 글자가 쓰여진 채 출토된 신라 토기가 용왕 관련 제사용기였다는 점과 역사책 ‘삼국사기’에서 월지를 관장한 동궁관(東宮官) 예하에 용왕전(龍王典) 관부가 있었다는 기록 등이 통설의 토대였다. 신라 멸망 뒤엔 월지 일대가 폐허화해 제사도 사라진 것으로 간주해왔으나, 이번에 ‘용왕’(龍王)이 쓰인 후대 백자 조각들이 보고되면서 조선 초기까지 월지에서 용왕 의례가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게 됐다.
‘산디’(또는 산미)라는 순한글 글자가 먹으로 굽 부분에 쓰여진 월지 출토 16세기 백자 조각. 산디는 사람의 이름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노형석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월지에서 출토된 자기들 중 일부에서 ‘杞溪窯’(기계요)란 생산가마 명칭을 찾아낸 것도 성과로 꼽힌다. 조선시대 경주부 기계현(杞溪縣: 오늘날 포항시 기계면 일대)에 있던 가마에서 만든 자기임을 뜻하는 것으로, ‘기’(杞) 자만 쓴 백자 조각들도 ‘기계요’의 줄임말일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조선 문종 2년인 1454년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기계현 대지동리(현재 포항시 죽장면 지동리)에 도기소가 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죽장면 감곡리·정자리, 기북면 오덕리 등 조선시대 옛 기계현 영역에서는 아직 발굴은 진행되지 않았으나, 지표 조사를 통해 가마터가 보고된 바 있다. ‘기계요’ 글자는 기계현에서 생산한 자기 유통망의 실체를 일러준다는 점에서 도자사의 중요한 발견으로 꼽을 수 있다는 평가다.
월지에서 출토된 신라 토기와 조선시대 백자 조각들이 위아래로 진열된 모습. ‘龍王辛’(용왕신)이 새겨진 신라시대 토기 조각들(위쪽)과 제사를 올리는 주인을 뜻하는 순한글 ‘졔쥬’와 ‘王’(왕) 자가 굽 부분에 먹글씨로 쓰여진 조선시대 초기의 백자 조각들이다. 노형석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밖에 다른 백자 굽들에서는 ‘十’(십), ‘介石’(개석), ‘器’(기)란 먹글씨가 확인됐다. ‘십’(十)의 경우 서울 청진지구 유적을 비롯해 한양도성 등에서 다수의 새김 자기들이 출토됐고, 경주 재매정터 출토 백자 굽에서도 판독된 바 있다. 점 찍는 방식으로 자형을 변형한 사례들도 보여 부호였을 것이란 이론도 제기된다. ‘개석’(介石)은 돌보다 단단해 절개를 굳게 지킨다는 뜻. 사람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백자의 소유자 또는 사용자를 구분하기 위해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들을 연구한 이현태 연구사는 “먹글자를 적은 백자 출토품들은 조선 초기 경주 지역 생활사를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자료들”이라며 “특히 일부 백자에서 보이는 순한글 글자들의 경우 그 시기 관련 자료가 극히 드문 경주 지역 한글문화사 연구에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늘날 포항시 영역에 있는 조선시대 경주현 백자 가마터의 이름 ‘杞溪窯’(기계요)가 굽에 먹글씨로 쓰여진 조선 초기 16세기의 백자 파편. 노형석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통일신라시대 월지 주변 건물에 부착한 것으로 보이는 금속 장식물 출토품에서도 새 명문이 발견됐다. 문의 모서리 부분을 마감한 띠쇠로 추정되는 금속 장식 내면에 서체가 다른 ‘內干’(내간)이란 한자가 판독됐다. 엑스선 촬영 결과 한 글자만 날카로운 도구로 새겼고, 다른 세 글자는 끌을 짧게 쳐서 선이 점선처럼 보이는 축조(蹴造) 기법으로 새겼음이 밝혀졌다.
‘內干’(내간)이란 관원명이 새겨진 신라시대의 추정 띠쇠 장식. 표면에 노란 삼각형 표식을 붙인 부위에 각각 ‘內干’이 새겨져 있다. 지난 9일 국립경주박물관이 사전 공개한 월지 출토 문자새김 유물들 가운데 일부다. 노형석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내간’은 당대 신라 왕실과 궁궐 사무를 맡은 내성(內省)의 관원을 일컫는 명칭으로 추정된다. 처마 서까래 또는 난간 마구리 장식으로 추정되는 금동판은 1970년대 발굴 직후 ‘義壹金知’(의일금지)란 한자들이 새겨진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최근 엑스선 촬영 결과 ‘의일사지’(義壹舍知)임이 밝혀졌다. 이 금동판은 그동안 학계에 소재 미상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에 박물관이 실물을 처음 공개하면서 기존 판독문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사지’(舍知)는 신라의 17관등 가운데 13관등. ‘의일’(義壹)은 ‘사지’(舍知)의 수식어일 수도 있으나 관리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추정 띠쇠 장식의 표면 세부. 노란 삼각형 표식을 붙인 부위에 각각 신라 관원명인 ‘內干’(내간)이 새겨져 있다. 노형석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월지 출토품에 관리의 이름이 새겨진 선례는 ‘조로 2년’(調露二年)명 전돌에 새겨진 ‘한지벌부(漢只伐部)의 군약(君若)’이란 인명으로, 기와 만드는 와전(瓦塼) 공방의 관리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동궁과 월지의 창건이나 중수 때 공사에 직접 관여한 관리 추정 인명이 드러난 건 ‘의일(義壹) 사지(舍知)’명 금동판이 처음이라고 박물관 쪽은 설명했다.
‘十’(십) 자를 먹글씨로 굽 부분에 써넣은 월지 출토 16세기 조선 초 백자 조각들. 노형석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공개된 연구 결과는 박물관이 지난해부터 경주 동궁과 월지 출토 소장품을 재정리하면서 벌여온 ‘월지 프로젝트’의 첫 성과물. 앞으로도 프로젝트를 지속해 연구 성과를 계속 공개할 계획이다. 글자들이 드러난 월지 출토품들은 내년 월지관 재개관 때 상설전시를 통해 선보인다.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