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9 (금)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38] 패러다임의 흥망성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Billie Eilish ‘Everything I Wanted’(2019)

조선일보

빌리 아일리시 'Everything I wanted'(2019)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기존의 질서가 일거에 몰락하거나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진화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의 교수인 경영사회학자 리언 메긴슨은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빌려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유명한 말을 남긴다. 즉 가장 지적이거나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을 인식해서 수용하고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일본 세이코사의 혁신적인 쿼츠 기술 때문에 스위스의 전통적인 시계 브랜드들이 대거 몰락한 것이나, 필름 카메라 시절의 강자였던 니콘이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이르러 소니에 밀려 도산의 문턱까지 내몰린 것, 그리고 한때 모바일 폰의 선두 주자였던 노키아가 단 4년 만에 시가총액이 1/9 수준으로 폭락한 것. 셀 수도 없는 이런 사례들이 기술 혁명이라는 산업 내부의 동인이라면 원격 및 비대면화로 요약되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는 외부적 요인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얼마든지 요동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인공지능을 앞세운 챗GPT의 출현 이후 단기간에 몰락한 기업들을 분석했는데 그 첫번째가 미국의 온라인 교육 서비스 업체인 체그(Chegg)였다. 학생들의 과제 수행에 도움을 주는 일종의 스터디 가이드인 이 회사는 팬데믹 기간에 유료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2022년 챗GPT가 출시되면서 학생들은 유료 구독을 취소하고 무료 챗봇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으며, 고작 일년 만에 체그 주식은 99% 급락하면서 약 20조원의 시가총액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꿈은 이루어졌지만 사라지는 것은 더 빨랐다. 21세기 팝의 아이콘 빌리 아일리시는 이 노래에서 모든 것을 얻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악몽일 수 있음을 특유의 몽환적인 톤으로 노래한다. “나는 꿈을 꾸었고/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지/나는 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래서 골든 브리지에서 발을 내디뎠어(I had a dream/I got everything I wanted/Thought I could fly/So I stepped off the Golden).” 이 노래의 숨은 주제는 추락한 많은 이가 극단 선택하는 비극이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강헌 음악평론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