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 단체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가 지난 9월21일 서울역 앞에서 금융투자소득세 반대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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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미국 대통령선거가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고 나서 선거 결과에 관한 분석이 어지러이 쏟아지고 있다. 여러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대체로 인정하는 것은 이제 극우 포퓰리즘 시대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백인 남성 블루칼라는 다수가 트럼프에 표를 던졌다. 민주당 표밭이라 여겨지던 흑인과 히스패닉 공동체에서도 트럼프 지지가 크게 늘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학력 수준에 따라 지지 후보가 확연히 갈렸다는 사실이다. 대졸 이상 학력을 지닌 인구는 민주당에 몰표를 던진 반면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은 인구에서는 트럼프가 압승을 거뒀다.
말하자면 계급 정치가 작동했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이 명확히 갈렸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계급 가운데 상대적으로 더 불안정한 계층과 고학력 중간계급이 각각 두 진영의 구심 역할을 하는 정치 지형이 대두했다. 한 세기 전이었다면 전자는 사회주의의 대중적 기반이 됐겠지만, 지금은 구도가 전혀 다르다. 후자가 오히려 리버럴 혹은 중도좌파를 지지하고, 전자는 극우 포퓰리즘에서 자기 언어를 찾으려 한다. 트럼프주의가 불만에 찬 노동 대중의 언어가 되고 있다.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방향으로 역사가 펼쳐지려는 순간이다.
미국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의 시계는 과연 어디쯤 와 있는지가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른다. 유럽과 남북미를 강타한 포퓰리즘 물결이 결국 이 땅에도 상륙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계급 정치가 혐오 정치와 만나 충격적 변종을 낳을 가능성을 미리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꼭 필요한 진지한 고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한국의 계급 지형은 미국, 유럽과 크게 다르다는, 단순하면서도 중대한 사실이 그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계급은 여전히 무정형의 대중에 가깝다. 좌파 전통을 통해 노동계급이 뚜렷한 가시적 세력으로 존재해온 유럽과는 다르다. 미국은 좌파 전통은 약해도 어쨌든 오랫동안 노동조합이 뉴딜연합의 일원으로 대접받은 사회다. 또한 특정 지역사회나 비백인 공동체들과 계급 균열선의 교차를 통해 노동계급 정체성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이런 유럽, 미국 사회이기에 노동계급을 주된 지지 기반으로 삼는 신흥 포퓰리즘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중간계급, 특히 고학력 중간계급의 목소리다. 노동계급은 숫자에 비해 목소리가 약한 반면 공론장은 압도적으로 중간계급에 의해 좌우된다. 교육 경쟁이나 부동산 투자가 사회 전체의 관심사가 될수록 중간계급의 헤게모니는 더욱 강해지고, 대졸자 비중이 급증한 젊은 세대로 갈수록 이 양상은 더 심해진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포퓰리즘의 전조라 할 현상조차 중간계급을 중심으로 출현한다. 최근 정계를 뒤흔든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운동이 그 사례다. 한국은 포퓰리즘마저 노동계급 배제 질서에 포획된 사회다.
그래서 미국이든 한국이든 지금 시급한 과제는 다시 계급 정치로 눈을 돌리는 것이더라도 그 내용은 다를 수밖에 없다. 분노한 노동계급이 극우 포퓰리즘과는 다른 언어를 찾도록 하는 것이 저들의 과제라면, 이곳에서는 여전히 노동계급이 ‘투명인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노동계급 대 중간계급의 지형이 저들의 걱정거리라면, 이곳에서는 다른 모든 집단의 목소리를 덮어버리는 중간계급 과잉 대표의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 당면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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