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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김한수의 오마이갓]명동 한복판 ‘영성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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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개관 ‘전·진·상 영성센터’...여대생 기숙사, 교육관, 심리상담소 거쳐 영성센터로

조선일보

명동 한복판의 '전진상 영성센터'는 올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새 단장을 마쳤다. 전진상 영성센터 건물 앞에 선 신선미 센터장.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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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 한복판에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것은 저도 몇 년 전까지 몰랐습니다. 명동성당 바로 옆, 옛 계성여고 후문 바로 앞 지상 5층 건물 입구엔 ‘전·진·상 영성센터’이란 문패가 붙어 있지요. ‘국제 가톨릭 형제회(AFI)’라는 글자로 새겨져 있고요. 건물 바로 옆 골목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명동 거리입니다.

화려한 조명과 간판이 즐비한 명동 거리에서 몇 발자국만 떨어지면 나타나는 이 건물에 들어서면 고요함이 흐릅니다. 불과 몇 미터 앞에서 빛의 속도로 날아다니던 시간이 이곳에선 천천히 흐르는 느낌입니다. 이 건물은 명동의 변화를 지켜보고,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변화에 맞춰 스스로 역할을 변신하며 7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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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상 영성센터에서 전시되고 있는 초창기 모습. /전진상 영성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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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건물 1층 로비에선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라’(Becoming Being)’라는 주제로 이 곳의 역사를 보여주는 아카이브 사진전이 30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거창한 사진 전시회는 아니지만 작지만 뚜렷한 자취를 남긴 전진상 영성센터의 걸어온 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지상 5층, 연면적 2228㎡(약 675평) 규모인 이 건물은 1950년대 건립돼 한국 가톨릭 현대사의 한 부분을 맡아온 증인이기도 합니다. 건립 초기엔 가톨릭 여대생 기숙사, 1970~80년대엔 월요강좌와 함석헌의 노자 강의(1976~1988) 등 성인사회교육 기관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는 영성심리 강좌와 상담을 하는 곳으로 역할을 옮겨가며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해온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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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서울 여의도 공항에 도착해 환영받는 AFI 회원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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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의 시작은 1956년 당시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의 요청으로 ‘국제 가톨릭 형제회(AFI)’ 회원 2명이 입국하면서 시작됐습니다. AFI는 1937년 이본 퐁슬레(Poncelet)가 중국 선교와 평신도 운동에 앞장섰던 뱅상 레브 신부의 뜻을 기려 벨기에에서 창설한 재속(在俗) 가톨릭 평신도 단체입니다. 이 단체의 모토 ‘전진상’은 사람 이름 같지만 한자로 단체의 정신을 정리한 것입니다. ‘전희생(全犧牲·온전한 자아봉헌)’ ‘진애인(眞愛人·진실한 사랑)’ ‘상희락(常喜樂·항상 기쁨)’의 첫 글자를 딴 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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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상 영성센터의 전시장 모습. /전진상 영성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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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I 회원 가운데에는 서울 시흥 전진상의원 배현정(78) 원장이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졌지요. 벨기에 간호사 출신으로 본명이 마리 헬렌 브라쇠르인 배 원장은 1972년 한국에 왔지요. 원래 한국에 올 때는 소록도 같은 지방에서 봉사하고 싶어했는데 김수환 추기경이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온다. 서울이 더 급하다”고 권해서 1975년 시흥에 전진상의원을 열고 의대에 편입해 가정의학과 전문의까지 따고 반세기 동안 봉사하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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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전진상 센터에서 활동하던 김민기(왼쪽)와 그룹 해바라기의 모습.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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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이 1957년 9월 28일 문을 열 당시의 이름은 ‘가톨릭여학생관’. 서울로 유학 오는 여대생을 위한 기숙사여서인지 개관 미사 때는 대전교구장, 춘천교구장, 부산교구장도 참석한 사진이 전시돼 있습니다. 설립 초기 여대생 기숙사로 시작했지만 이 건물은 ‘산실(産室)’로도 유명했답니다. 모임 장소도 마땅치 않던 시절 명동 한복판의 교육관은 안성맞춤이었겠지요. 가톨릭학생회, 여성연합회, 가톨릭 노동청년회, 대학생연합회 등 다양한 가톨릭 운동이 이 건물을 중심으로 태동했답니다. 이 무렵 명동성당 부근엔 또다른 명소가 탄생합니다. 1961년 준공된 성모병원입니다. 성모병원은 1980년 강남 반포로 이전하고 현재는 가톨릭회관으로 변신해 다양한 단체들이 입주해 있습니다. 가톨릭회관이 생기기 전까지는 전진상 교육관이 가톨릭 단체들의 회관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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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상 센터에서 영성 강연 후 기념촬영한 안셀름 그륀 신부(뒷줄 가운데).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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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는 건물 이름을 ‘전·진·상 교육관’으로 바꿉니다. 꽃꽂이 강습, 묵화 교실, 젊은이들의 노래 공간인 ‘해바라기 살롱’, 영상포럼 등 문화강좌도 열었답니다. 전시된 사진 중에는 병풍 앞에 앉아 마이크를 잡은 고(故) 김민기의 모습과 이정선 이광조 등 그룹 ‘해바라기’의 공연 모습도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이 건물은 ‘영성’을 주제로 또 한번 변신합니다. 1997년 ‘전·진·상 영성심리상담소’가 개소한 것이지요. 신선미 센터장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1980년대 민주화를 거쳐 1990년대가 되면서 ‘집단’에서 ‘개인’으로, 사회의 빛·진리에서 개개인의 진리를 추구하는 쪽으로 사회 트렌드가 변화했어요. 그래서 저희 센터도 개개인의 마음 치유에 초점을 맞추게 됐지요.” AFI 창립자인 퐁슬레 신부의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이 전시회의 주제가 된 것처럼 시대의 변화에 맞게 변신한 것입니다. 센터는 봄·가을 3개월 과정으로 ‘자아의 통합과 영성’ 과정을 개설하고 있고요, ‘영성심리 독서모임’과 특강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과정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영성센터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노후된 시설을 고쳐 지난 2월말 복합문화공간으로 새 단장했습니다. 기존의 심리상담과 인문학 강좌에 더해 피정과 연수, 세미나 등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지요. 이번에 전시회를 마련한 것에 대해 신 센터장은 “곧 70주년이 되는데 영성센터의 역사를 알리고 싶어서”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도 1층 로비는 전시 공간으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센터에서는 오는 28일 오후 2시30분에는 융 분석심리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이부영(92)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의 특강 ‘자기실현에 대하여’도 열립니다.

도심 한가운데서 70년 가까이 ‘영성의 샘’ 역할을 해온 ‘전·진·상 영성센터’가 앞으로도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라’는 말씀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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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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