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유학생 사칭해 14억 편취... ‘로맨스스캠’ 국제 사기단 검거

나이지리아 등 외국인과 필리핀 출신 귀화자 등으로 구성된 조직

경찰이 로맨스 스캠 국제 사기단으로부터 압수한 물품 목록.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소셜미디어(SNS)에서 미군이나 유학생 행세를 하며 친분을 쌓은 뒤 금품을 요구하는 이른바 연애 빙자 사기(로맨스 스캠)로 거액을 편취한 사기단이 경찰에 검거됐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국제범죄수사계는 로맨스 스캠 국제 사기단 총책인 러시아 국적 남성 A(44)씨와 조직원 등 12명을 사기 등 혐의로 검거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가운데 A씨를 비롯한 9명은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파병 미군과 유엔 직원, 유학생 등을 사칭하며 SNS로 친분을 쌓은 피해자 14명으로부터 총 68회에 걸쳐 14억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나이지리아와 앙골라 국적의 외국인과 필리핀 출신 귀화자 등으로 이뤄진 이들은 점조직 형태로 운영됐다. A씨가 국내에서 범죄수익을 관리하는 총책 역할을 했고, 다른 조직원들은 인출책 또는 인출책 관리를 맡았다고 한다. 피해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이들은 해외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A씨 등 이들 조직은 프로필에 가짜 사진이나 경력을 올리고 남성 피해자에겐 여성인 척, 여성에겐 남성인 척 접근을 시도해 범행을 저질렀다. 특히 이들은 문자로만 대화하며 외로움 등을 느끼는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연인 관계로 발전한 것처럼 행세했다.

피해자 남성 B(26)씨는 미국 유학생 행세를 하며 ‘은행 계좌가 동결돼 해제할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접근한 조직원에 넘어가 29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또 이들이 해외에서 근무하는 선박 직원을 사칭하며 ‘짐을 보낼 테니 통관비를 대신 납부해주면 변제하겠다’라고 속인 데 넘어간 피해자 C(40)씨는 1억6500만원의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이 중 1억3000만원은 C씨가 대출까지 받아 건넨 돈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피해자들을 허위 사이트로 유도한 뒤 가짜 정보를 확인하게 하는 등 수단이 고도화되고 있다”며 “SNS를 통해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금품을 요구받을 경우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로맨스 스캠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죄에 해당하지 않아 범행 계좌 지급정지 등의 임시 조처를 할 수 없고, 범행에 이용된 대다수 계좌는 국내에 입국했던 외국인이 출국하면서 판매한 대포통장”이라며 “외국인 명의 계좌는 명의자가 체류 기간 만료 후 출국할 경우 이용이 정지되도록 하는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구동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