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전북 전주시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강태완씨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강씨의 어머니(앞줄 왼쪽에서 둘째)가 아들의 영정을 들었다. 금속노조 전북지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에서 26년을 이주아동으로 살며 국내 정착을 꿈꾸다 중대산업재해로 사망한 강태완(몽골명 타이반·32)씨의 어머니가 “아들 죽음의 진실을 규명해서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저는 강태완의 엄마 이은혜입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어머니 이은혜(몽골명 엥흐자르갈·62)씨가 14일 전북 전주시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울음을 누르며 호소했다.
“남편 없이 힘들게 키워온 아들을 하루아침에 잃었어요. 내 아들이 왜 죽었는지 제대로 밝혀서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게 해주세요.”
엿새 전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주검이 안치된 병원으로 달려왔을 때 어머니는 조사 나온 경찰에게 붙잡힐까 두려워 병원 밖을 맴돌며 울었다. 그 어머니가 아들 죽음의 책임을 물으며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 카메라 앞에 섰다. 태완씨의 어머니는 전날 국가인권위원회와 법무부의 협조 약속을 받고 출입국·외국인청을 찾아 체류 자격(사망자 가족에게 부여하는 G-1-7)을 신청했다.
아들 태완씨는 지난 8일 전북 김제의 특장차업체 에이치알이앤아이(HR E&I, 옛 호룡)에서 10t짜리 무인 건설장비와 고소작업 차량 사이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자진출국과 재입국 등 힘든 여정을 거친 끝에 겨우 지역특화형 비자(인구소멸지역 5년 거주자)를 얻어 취업한 지 8개월 만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고인의 산재 사망에 대한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철저하고 신속한 진상규명, 특별근로감독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등을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태완씨 사망 이후 에이치알이앤아이는 어머니에게 사과 의사만 표명한 뒤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공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수립, 산재 처리 협조 등 유족 쪽의 요구엔 별다른 응답이 없다. 기자회견 뒤 진행된 면담에서 황정호 전주지청장은 “절차와 규정에 따라 신속하게 원인을 파악하겠다”는 원칙적인 답변을 했다. 회사 대표에 대한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산재 원인을 규명할 리모컨의 행방 등 초동수사에 대한 의구심도 유족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에이치알이앤아이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태완씨는 사건 당시 회사가 개발 중인 장비(텔레핸들러)를 테스트 장소로 옮기기 위해 리모컨을 조작하고 있었다.
사망 당일 병원을 찾아온 회사 간부는 “사고를 당할 때 (리모컨이) 같이 부서졌다”고 했으나 지난 10일 만난 이 회사 대표는 “(태완씨가 사용했던) 리모컨으로 작동해보니 문제없이 후진이 됐다”고 했다. 유족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태완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고 장비를 트럭으로 연결해 끌어냈다’고 설명했지만 회사는 ‘리모컨으로 후진시켜 빼냈다’고 했다. 회사가 유족에게 보여준 시시티브이(CCTV) 영상은 사고 순간에 멈춰 있어 이후 구조 상황은 확인되지 않는다.
고인의 어머니와 시민노동단체들은 “에이치알이앤아이는 책임을 고인에게 떠넘기지 말고 고인의 죽음에 사과하고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했다. 그들은 “고 강태완의 산재 사망은 한국에서 평생 살아온 미등록 이주아동이 영주권을 앞두고 산재로 사망하게 된 사건”이라며 “추후 수사당국과 노동청 조사 과정에서도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주/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