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청수 교무 감사패 받아
54회 ‘라자로의 날’ 행사
성 라자로 마을은 6·25전쟁 직전인 1950년 경기 시흥에 ‘성 나자로 요양원’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것이 시작. 1970년대 고(故) 이경재(1926~1998) 신부가 원장을 맡아 명칭을 ‘성 라자로 마을’로 바꾸고 시설을 확충하고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박 교무도 1975년 라자로 마을과 첫 인연을 맺었다. 종교인이 다른 종교의 시설을 50년 동안 돕는 일은 흔치 않다. 그것도 원불교보다 교세가 큰 천주교 시설을 후원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박 교무는 이에 대해 “당시 교단의 어른을 모시고 다른 종교의 복지시설을 방문하던 중 한센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며 “소외된 한센인을 돕는 것이 종교 간 화합과 평화가 오게 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성 라자로 마을을 돕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경재 신부의 요청으로 주방 가구를 지원했으며, 엿을 떼어다 팔아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1980~1990년대 원불교 강남교당을 맡았을 때에는 교도들과 함께 라자로 마을을 찾아 선물을 전하고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박 교무는 지난해 낙상한 이후 보행이 불편해 이날 휠체어를 타고 행사에 참석했다. 이용훈 주교는 마지막 박 교무 차례가 되자 단에서 내려와서 휠체어를 탄 박 교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고 감사패를 수여했다. 이 주교는 격려사에서 “50년 동안 라자로 마을을 후원해 주신 지극히 존경하는 박청수 교무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주성 원장 신부도 “사실 1년도 쉽지 않은데 50년 세월을 후원해 주신 박 교무님께 특별히 감사드린다”며 “교무님이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올라가셨는데 평화상도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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