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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 (일)

[해외 스포츠 인사이드] 신장 아닌 심장으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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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농구 매료시킨 단신 가드 가와무라

“위 원트 유키(우리는 유키를 원해)!”

NBA(미 프로농구) 멤피스 그리즐리스 홈구장인 페덱스 포럼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관중 구호다. 4쿼터 막판 승부가 한쪽으로 기울게 되면 그리즐리스 팬들은 어김없이 후보 포인트 가드인 가와무라 유키(24·일본)를 경기에 내보내달라고 소리친다. 심지어 상대 팀 팬들도 동참하는 분위기. 가와무라가 코트를 밟는 순간 장내는 열광에 빠진다.

키 172㎝인 가와무라는 NBA에서 가장 작은 선수다. 하지만 불리한 체격 조건과 짧은 출전 시간에도 정확한 외곽 포와 유려한 드리블, 우아한 플로터(림을 향해 한 손으로 공을 높게 띄우는 슛)를 앞세워 NBA 팬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 ‘걸어다니는 만리장성’ 야오밍(45·중국), 2010년대 초반 센세이션을 일으킨 대만계 미국인 제러미 린(37) 이후 가장 뜨거운 아시아계 선수로 떠오른 그가 화려한 ‘노룩 패스(동료를 보지 않고 하는 패스)’로 코트를 수놓을 때면 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낸다. 팀 동료 마커스 스마트는 “키가 작아 가끔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갑자기 튀어나와 현란한 기술을 선보이니 환호가 절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30일(한국 시각)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와 벌인 원정 경기에서 경기 막판 11분을 뛰면서 10득점 3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NBA 데뷔 후 최고 활약을 펼쳤다. 15경기 출전 만에 이뤄낸 두 자릿수 득점. 그리즐리스는 이날 106대130으로 대패를 당했지만, 상대 팀 선더의 스타 가드 샤이 길저스알렉산더는 “가와무라는 농구를 할 줄 아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하경


가와무라는 167㎝ 키로 프로 무대와 국가대표에서 활약한 도가시 유키(32)를 보며 농구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18세 나이로 일본 프로 농구 B리그 최연소 출전 기록을 세웠고, 2023년엔 리그 MVP를 차지하며 일본 무대를 정복했다. 늘 해외 무대로 나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는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전환점을 맞았다. 개최국 프랑스와 연장 접전을 벌인 조별 리그 B조 2차전(90대94 패)에서 29점으로 맹활약했다. 가와무라는 당시 빅토르 웸바냐마(223㎝·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뤼디 고베르(216㎝·미네소타 팀버울브스) 등 NBA를 주름잡는 장신 센터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슛을 던지고 돌파하며 세계 무대에서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가와무라는 올림픽 활약에 힘입어 그리즐리스 훈련 캠프에 참가했고, 작년 10월 정식 계약을 따냈다. 하부 리그인 G리그를 오가며 NBA 경기에 출전할 기회를 얻은 것. 그는 신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하체 근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다. 가와무라는 “강한 하체가 없다면 NBA에서 버틸 수 없다”고 말했다. 사다리 모양 기구를 바닥에 놓고 지그재그로 스텝을 밟는 훈련을 통해 강점인 스피드와 민첩성을 더욱 키우고, 불안정한 곳에서 한 발로 서는 등 균형 감각을 향상하는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와무라의 등장으로 소환되는 선수가 바로 160㎝ 키로 한 시대를 풍미한 먹시 보그스(60). NBA 역사상 최단신 선수인 보그스는 14시즌 동안 NBA에서 활약하며 샬럿 호니츠 구단 최다 어시스트(5557개)와 스틸(1067개) 기록을 세웠다. 168㎝의 스퍼드 웹(62)은 엄청난 탄력으로 1986년 NBA 덩크 콘테스트에서 우승했다. 가와무라는 이러한 전설들을 우상으로 삼고 한계를 능력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모습에 아시아 팬들은 일본 농구 만화 ‘슬램덩크’ 등장인물 송태섭(168cm)의 현실판이라며 응원을 보낸다. 그는 “키 작은 아이들이 나를 보고 농구를 시작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으면 좋겠다”며 “좋아하는 농구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매 순간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승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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