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없이 깜짝 등장...부동층 표심 공략 의도
자신 모습으로 분장한 배우에게 덕담, 트럼프 겨냥한 발언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카말라 해리스(오른쪽) 부통령과 배우 마야 루돌프가 2일 밤 미 NB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SNL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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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상대방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어요. 그 때문에 이 자리까지 왔다는 걸 상기시켜 주려고 왔어요.”
오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서는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이 미 NBC의 유명 시사풍자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해리스는 이날 거울 맞은편에서 자신과 똑같은 검은 정장을 입고 동일한 머리 스타일을 한 배우 마야 루돌프를 응원(pep talk·격려의 말)하는 역할을 했다. 해리스는 지난달 ABC 토크쇼 ‘더 뷰’에 출연해 “루돌프의 연기는 정말 훌륭하다”며 칭찬했었다.
미국 NBC의 SNL(Saturday Night Live)은 1975년 시작한 이래 매주 일어난 정치·문화계 이슈를 패러디로 풀어내는 미국의 대표적 풍자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시즌50가 방영 중인 지금도 연일 날카로운 풍자를 선보이며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다. 해리스가 미 대중들에게 고루 인기가 많은 SNL에 ‘깜짝’ 출연한 건 선거 막바지에 부동층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스는 “선거 운동 막판에 SNL에 출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날 동부 시각 오후 11시30분부터 시작된 방송에서 해리스를 연기한 루돌프는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말하는 독백 형식의 연기를 했다. 해리스를 연기한 루돌프는 마지막 유세에 앞서 잠시 생각할 시간을 요청한 뒤 대기실로 보이는 방으로 들어섰다. 루돌프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내 입장이 돼 본 사람,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흑인이자 아시아 여성과 이야기 하고 싶다. 가급적이면 베이 지역 출신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해리스가 거울 맞은편에서 등장했다. 미 역사상 첫 ‘아시아계 흑인’ 여성 대통령 후보인 해리스는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시를 중심으로 하는 광역 도시권 베이 에어리어(Bay area) 출신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위스콘신주 유세에 앞서 쓰레기 트럭에 탑승해 취재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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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는 “당신은 당신의 상대자(opponent·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며 사실상 자신을 안심시켰다. 이어 해리스는 “당신은 문을 열 수 있다”고도 했다. 이는 트럼프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지난달 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트럼프 지지자들을 ‘쓰레기(garbage)’라고 지칭했다는 논란이 일자, 트럼프는 바이든의 발언을 쟁점화하기 위해 형광색 환경미화원 조끼를 입고 유세에 나섰었다. 그런데 유세 ‘컨셉’에 맞게 마련된 쓰레기 트럭 문을 열고 탑승하려다가 문을 제대로 열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이 포착돼소셜미디어에 급속도로 퍼졌었다. ‘문을 열 수 있다’는 표현은 이를 조롱한 것이다.
루돌프는 “미국 국민은 혼란을 멈추길 원한다”고 말했고, 해리스는 “드라마(혼란)를 끝내라”고 했다. 해리스는 루돌프가 해리스를 흉내내면서 소리내 웃자 “내가 그렇게 웃는 건 아니죠?”라고 했고 루돌프는 “조금 (그렇게 웃는다)”이라고 대답해 둘이 함께 웃기도 했다. 해리스와 루돌프는 “우릴 위해 투표할게요” “잘됐네요” 등의 덕담을 주고 받았다.
해리스는 루돌프에게 “혹시라도 펜실베이니아주에 유권자로 등록이 돼 있느냐”고도 물었다. 펜실베이니아주는 선거인단이 가장 많은 19명이 달려있는 이번 대선 최대 격전지다.
트럼프 캠페인은 즉각 반발했다. 트럼프 캠프 대변인 스티븐 청은 폭스뉴스에 “해리스는 미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것이 없기에 ‘토요일 밤의 좌파들(Saturday Night Leftists)’에 출연해 뒤틀린 환상의 쇼를 하고 있다”고 했다. SNL은 트럼프의 발언들이나 정책에 대해 조롱에 가까운 풍자를 해왔다. 이에 트럼프는 과거 “NBC 뉴스는 나쁘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NBC의 SNL”이라고 했었다.
해리스는 당초 이날 오후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의 유세를 마친 직후 다음 유세 일정이 잡혀있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럽게 뉴욕시로 목적지를 바꿨다.
정치 풍자로 유명한 SNL은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양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각각 따로 출연시킨 적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정치 입문 전인 2004년 SNL에 출연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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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민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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