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재능 기부 ‘소울챔버’
음악감독 김인경씨
‘소울챔버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김인경 음악감독을 월드비전 본사에서 만났다. 소울챔버는 오는 12일 예술의전당에서 여는 연주회 ‘월드비전과 함께하는 The Gift’의 수익금 전액을 잠비아 식수 인프라 사업에 기부한다./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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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첼리스트가 월드비전 홈페이지에 무작정 글을 올렸다. 깊은 밤 아이들을 재우고 타닥타닥 ‘독수리 타법’으로. 내용은 이랬다. “음악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주는 일을 하고 싶은데 방법을 알려주세요. 무엇이든 좋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한 월드비전 직원이 연결됐고, 음악회를 하고 그 수익을 기부할 길이 열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울챔버오케스트라’는 2009년 첫 공연을 시작으로 그간 누적 4억6700여 만원을 모아 에스와티니·우간다·에티오피아·니제르·탄자니아 등에 식수 펌프를 설치했다. 올해부터는 잠비아 125개 지역 80만 주민에게 깨끗한 물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나선다.
12일 예술의전당에서 아홉 번째 공연을 앞둔 김인경(51·첼리스트) 음악감독을 지난달 23일 만났다. 김 감독의 친구·지인 12명이 모여 시작한 소울챔버는 현재 약 80명 규모의 어엿한 오케스트라로 성장했다.
음악회 수익을 아프리카에 기부하는 소울챔버오케스트라의 공연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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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말고 다른 재주는 없어서”
-막바지 준비로 바쁘시겠습니다.
“단원들이 재능 기부로 이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고 있어요. 일요일 저녁 때 모여 연습하고 있는데, 모두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연주합니다.”
-후원을 위해 꾸려진 오케스트라는 드문 것 같은데요.
“일회성 기획은 꽤 있지만 15년간 유지되면서 더 확장된 경우는 저희뿐인 것으로 알아요. 이렇게 오래갈 줄은, 계속 커질 줄은 저도 몰랐어요.”
올해 참여한 소울챔버 단원 중에는 기존 멤버의 아들도 있다고 했다. 엄마는 바이올린, 대학생이 된 아들은 타악기를 연주한다. “저희도 너무 감격스러워요. 소울챔버가 대를 이어 가족적인 오케스트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첫 단원 12명은 제 친구와 지인 중심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부부, 자매, 선후배들이 손잡고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요.”
-공연으로 기부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셨나요?
“저는 평생 음악만 한 사람이라 다른 재주는 없어요. 한비야씨의 책(그건 사랑이었네)을 읽고 무작정 월드비전의 문을 두드렸는데, 재능 기부가 그때 막 자리 잡을 때였습니다. 음악하는 사람들이 음악으로 기부를 하게 된 거죠.”
-코로나로 한참 중단됐지요?
“이번 무대는 2019년 이후 5년 만이에요. 공연 준비를 다 해놨다가 집합 금지가 풀리지 않아 포기했지요. 이러다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는 것 아닌가 했어요. 그런데 ‘또 언제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고, 이번에 준비하면서 보니 규모는 더 확대됐습니다. 이탈자는 단 한 명도 없고요.”
-관객도 ‘단골’이 많으신가요.
“네, 한번 온 분들이 계속 오세요. 그렇다 보니 관객과 연주자가 한 팀 같아요. 이번에 진행을 맡은 신윤주 아나운서는 지난 공연 때 직접 티켓을 사서 오셨대요. 음악 방송을 오래 하셨으니 그간 얼마나 많은 A급 공연에 가보셨겠어요. 그런데도 저희 공연은 끈끈하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남다르다고 해요.”
-5년 만의 재개라 벼르고 오시는 분이 많겠네요.
“사실 저희 티켓이 싸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기다리고 지지해주는 관객이 많아요. 우스갯소리로 ‘우물 몇 개 팠느냐’고 인사하는 분도 많고요. 이 공연에서만 뵙는 분들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느낌이랄까요.”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김인경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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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물이 있으면 삶이 바뀐다
-왜 식수 사업인가요?
“아프리카 아이들이 흙탕물을 먹고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아서 나선 일이었거든요. 깨끗한 물을 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즉흥적이었죠. 이 일을 한 지 15년이나 됐는데도 물에 대한 니즈는 끝이 없어요. 깨끗한 물이 절박한 사람이 너무나 많아요. 모든 게 물에서 시작합니다.”
-무슨 뜻인가요.
“식수가 가장 기본이에요. 아프리카에 가서 보니 물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예요. 아이들 눈빛부터 다릅니다. 물이 있는 곳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물 뜨러 안 가도 되니 학교에 갈 수 있고,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으니 미래가 있죠.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길어온 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고요. 그래야 수익이 생기고 선순환이 됩니다. 물이 출발점이에요.”
-후원한 아프리카 현장에도 가보셨나요.
“올여름에는 잠비아에 다녀왔어요. 후원을 받아 달라진 곳부터 둘러본 뒤 지원이 필요한 곳을 나중에 가봤는데 너무 극단적인 차이가 느껴졌어요. 깨끗한 물이 있는 곳의 아이들을 보면 ‘아, 이 아이들은 살겠구나. 꿈을 갖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점이 가장 다르던가요.
“아프리카 아이들은 손을 씻지 않아요. 먹을 물도 없는데 어떻게 손을 씻겠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답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넉넉해지면서 차차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이보다 큰 보람이 없어요.”
김 감독 일행은 이번 잠비아 입국길에 ‘운명 같은 우연’을 경험했다고 한다. “후원국에 갈 때 지원 물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거든요. 세관 통과하는 게 좀 어려울 때도 많아요. 늘 긴장하게 되는데, 이번 입국장에서 잠비아 공무원이 눈을 반짝이면서 ‘저도 월드비전 후원 아동 출신’이라고 하는 거예요. 서로 너무 기뻐 감격했어요. 몇십년간 물을 준 시간이 있어 이제 열매를 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식수 지원 사업을 수십년 했는데 구호 사업의 형태는 여전히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 질문을 하는 분이 굉장히 많아요. ‘그동안 우물 판 게 얼마인데 아직도 이 지경이냐, 정말 도움이 되는 거 맞느냐’는 거죠. 그런데 사실 끝이 없어요. 처음에는 이른바 ‘핸드 펌프’를 설치해 한 동네에 우물을 파줬는데, 이게 수명이 짧고 동물이나 인간에 의해 오염되기도 해요. 또 기후변화로 세계가 몸살을 앓지만, 아프리카는 더 직격탄을 맞습니다. 이번 잠비아 사업은 필요한 곳에 파이프라인을 쫙 깔아서 수도꼭지까지 달아주는 상수도 사업으로 발전했어요. ”
-기후위기도 장애물이군요.
“잠비아는 35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래요. 우리나라였다면 별일 없이 넘어갈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인프라가 아무것도 없다 보니 가뭄이나 비, 자연재해가 모든 걸 쓸어가요. 이 가뭄에도 식수가 있는 곳은 농사를 짓지만 없는 곳은 더 가난해지는 거죠.”
김인경 감독이 지난여름 잠비아를 방문했을 때 첼로를 연주한 뒤 어린이들과 함께한 모습./월드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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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를 완수하자!
소울챔버가 참여하는 잠비아 프로젝트는 2025년까지 5년간 650억원을 들여 잠비아 전역에 식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미국 월드비전이 르완다의 식수 사업을 완료한 데 영감을 받아 한 국가의 식수 문제 해결에 나선 대형 프로젝트다. 잠비아 인구 1900만명 중 식수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42%에 달한다. 김 감독은 “지금까지는 어떤 마을 단위로 지원을 했지만, 이번엔 한 국가를 대상으로 해 감회가 남다르다”며 “프로젝트 이름도 ‘Finish the Job(임무를 완수하자)’으로 정했다”고 했다.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인가요?
“코로나로 다 준비했던 공연을 어쩔 수 없이 접어야 했을 때는 너무 속상했어요. 그리고 아주 가끔 ‘제대로 지원되고 있는 것 맞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낙심하게 되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아프리카 아이들의 순수하고 맑은 눈빛! 형용할 수 없이 맑고 깊어요. 잠비아에 동행한 남편도 너무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막연히 알고 있던 것과 색감 자체가 다릅니다. 사실 아이들이 더 심란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을 들여다보면서 오히려 우리가 더 짐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뭔가 위로받고 치유되는 느낌이었어요.”
-가족들은 함께 무대에 선 적이 없나요.
“제가 벌인 일이다 보니 흥행이 늘 부담이에요. 1회 때는 큰애 친구들로 합창단을 만들어서 무대에 세웠어요. 그 아이 부모들은 적어도 표를 사서 참석할 거라는 생각에서요. ‘Heal the world’라는 마이클 잭슨 노래를 거의 립싱크로 부르고 리코더로 ‘반짝반짝 작은 별’을 연주했어요.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죠(웃음). 그랬던 큰애가 지금은 회사에 다니는데, 자기가 마치 멤버인 것처럼 ‘표 많이 팔았느냐’고 닦달하더라고요.”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음악 재능을 기부하는 첼리스트 김인경씨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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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즐거웠던 경험은?
“한비야 선생님과 최근에 단둘이 만났어요. 15년 만에 드디어! 선생님도 본인 책에서 영감을 받아 오케스트라를 꾸린 사람이 있다는 얘길 듣고 궁금해하셨대요. 소울챔버 탄생의 씨앗을 마주하게 돼 영광이었습니다. 첫사랑을 만나는 것처럼 떨리고 설레고.”
-이번 공연이 다른 점이 있나요.
“지금까지는 클래식 연주가 중심이었어요. 이번에는 팬텀싱어 출신 크로스오버 그룹 ‘라비던스’와 ‘라포엠’의 정민성씨, ‘레떼아모르’의 박현수씨 등이 함께 공연합니다. 12곡 중 9곡이 노래예요. 음악회보다는 콘서트같이 다양한 콘텐츠로 속을 채웁니다.”
-다음 목표가 있으신가요.
“소울챔버를 제가 무한정 이끌어 갈 수는 없잖아요. 모자(母子) 단원이 나온 게 아주 고무적이에요. 자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후배들이나 젊은 세대가 뜻을 이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공연 제목이 ‘더 기프트’예요. 연주자든 관객이든 ‘선물을 주는 마음으로’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The Gift(더 기프트)’ 공연 티켓 구매하려면: https://www.worldvision.or.kr/wv/soul_poster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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