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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목)

[만물상] 폴크스바겐이 어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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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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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세계 대공황이 1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 경제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 40%가 실업자가 됐다. 갓 집권한 아돌프 히틀러가 실업자 구제와 경기 진작책으로 자동차 전용 도로망 건설을 발표했다. 세계 최초의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 ‘라이히스 아우토반’(Reichsautobahn·제국 자동차 도로)은 독일 경제 부흥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

▶히틀러는 “자동차가 귀족들의 독점물이 되어선 안 된다”면서 ‘국민차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했다. 천재 자동차 공학자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를 불러 1000마르크 아래 가격으로 네 사람이 탈 수 있고, 100㎞ 이상 속도를 내며, 기름 1리터로 12㎞ 이상 달리는 ‘폴크스바겐(Volks국민+wagen차)’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오토바이 한 대 값으로 살 수 있는 저렴한 승용차를 만들라는 황당한 요구였다.

▶포르셰 박사는 3년간의 연구 끝에 공기 저항을 줄이는 딱정벌레 모양의 몸체에 냉각수가 필요 없는 공랭식 엔진을 차체 뒤에 장착한 ‘비틀’ 모델을 만들어냈다. ‘악마와 천재의 악수’로 탄생한 비틀은 2100만대나 판매돼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이후 경영권을 승계한 창업주의 외손자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비틀 후속 모델 ‘골프’를 성공시키고 그 자금력으로 람보르기니, 벤틀리, 아우디를 잇따라 인수했다.

▶그런데 창업자 포르셰 박사가 1898년 처음 만든 자동차는 배터리로 움직이는 전기차였다. 3마력 전기 모터를 탑재해 시속 35㎞ 속도로 80㎞를 주행했다. 무거운 배터리가 치명적 약점임을 간파한 포르셰는 1901년 세계 최초로 가솔린 기관을 발전기로 채택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의 전기차 개발은 1차 대전 발발과 군 입대로 중단된다. 포르셰의 군 입대가 없었다면 일론 머스크에 의해 100년 뒤 열린 전기차 시대가 한층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세계 1위 자동차 기업(매출 기준) 폴크스바겐이 중국 전기차 공세에 휘청이고 있다. 매출의 30%를 의존하던 중국 시장을 비야디 등 중국 전기차 기업에 뺏긴 데다, 안방인 유럽 시장마저 중국 기업에 밀리고 있다. 중국 전기차는 가격이 30~40% 이상 싼 데다 최신 자율주행 성능까지 갖췄다. 보통 4년 걸리는 신차 개발을 중국은 1년 반 만에 해내기에 도저히 경쟁이 안 된다. 결국 폴크스바겐은 1937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독일 공장 3개를 폐쇄하고 직원 임금을 10% 깎는 내용의 비상 대책을 발표했다. ‘국민차’ 기업이 독일 국민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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