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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나는 작가’ 자기암시가 글쓰기 근육 길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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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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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왠지 모를 자부심과 뿌듯함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오랜만에 했습니다. 이 벅찬 마음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은 욕구로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쓰기와 읽기는 연결돼 있고, 그렇기 때문에 독해력은 곧 문장력으로 이어집니다. 높은 수준의 글을 읽고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정도의 격조 높은 문장을 쓸 수 있습니다. 정제된 글을 읽고 정제된 글을 쓸 수 있어야 내가 통찰력을 얻고 그 통찰력을 다시 전해줄 수 있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계속 써야 합니다. 글을 계속 쓰게 하는 힘을 주고 글 쓰는 기쁨을 오랫동안 지속시켜 주는 건 ‘나는 작가’라는 자신에 대한 규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꼭 등단을 하거나 책을 내지 않았어도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게 필요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처럼 살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롤 모델이나 멘토를 떠올리며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서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다 보면 언젠가 자기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피그말리온 효과,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 하죠. 긍정적인 자기암시를 해보는 겁니다. 내가 나를 인정해주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기를 기대하는 모순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위치·상황 따라 달라지는 나





나는 작가라는 의식이 나를 알아가고 내 글을 찾아내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작가의 관점에서 보면 평소 보던 것들도 다르게 보이고, 매일의 일상도 새롭고 특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걸 찾게 되고, 좋은 면을 보게 되고, 희망과 용기, 올바름, 배려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는 것들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작가의 시선으로 모든 걸 대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글감을 발견하는 눈이 생기고 그 글감을 전달력 있게 표현해내는 힘도 길러집니다. 그렇게 차츰 써낼 수 있는 힘이 쌓여갈 겁니다.



깔끔한 단문을 잘 쓰기로 손꼽히는 작가 김훈의 인터뷰 중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마음에 강한 울림을 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하얼빈’이라는 소설을 쓰면서 “이토는 죽었다.” 이렇게 6음절로 마무리를 했는데 너무 딱딱하고 밋밋한 것 같아서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곧’이라는 단어 하나를 더 넣어서 “이토는 곧 죽었다”로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곧’이 대체 얼마큼인지 애매하지 않은가 싶어서 ‘곧’을 넣을까 뺄까에 대해 또 한참을 고민했다는 얘기였습니다. 1음절의 ‘곧’이라는 단어 하나도 이렇게 신중하게 골라 쓰는 사람이 작가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습니다. 독자들은 있는지 없는지조차 느끼지 못하고 별생각 없이 지나갈 단어 하나라도 말이죠. 이런 부분이 자신을 작가라고 의식하는 것과 않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이 작가라는 시야를 가지면 동시에 자기 글을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일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읽는 이의 관점에서도 자기 글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거죠. 스스로에게 작가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면 어휘 하나 표현 하나도 정확하게 찾아보고 확인한 후에 쓰게 되고, 기왕이면 더 많은 어휘 중에서 작가의 관점으로 이 문맥과 문장에 가장 적절한 것, 독자에게 가장 와닿을 하나를 골라내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부캐’(제2의 캐릭터)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죠. 우리 모두는 여러개의 캐릭터로 살아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기 안에는 여러 모습의 자신이 있고, 자신의 위치나 입장,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제게도 여러 모습이 있고, 불리는 호칭에 따라 정체성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깁니다. 선생일 때와 작가일 때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나 말투가 달라지고, 같은 작가일 때라고 하더라도 피디를 대할 때와 출연자를 대할 때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작가라는 인식 속에서, 그리고 스스로를 어떤 작가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사람들을 대할 때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저도 방송국에 들어가는 순간, 강단에 서는 순간, 각각에 맞는 모습으로 캐릭터가 다시 세팅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감이나 의욕이 떨어질 때 작가라는 캐릭터, 더 구체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작가의 모습으로 생각과 마음을 재설정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중요한 건 작가인 채로 계속 머물러 있고자 하는 강한 의지, 지금 여기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겁니다.



자신을 작가로 정의하는 순간, 더 많은 고민과 질문이 밀려올 수 있지만, ‘오직 질문을 통해서만 성장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작가의 시각으로 계속 고민하고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다 보면 그걸 계기로 생각이 깊어지고,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계획하고 노력하고 있는 모든 것이 좋은 글을 척척, 술술 빚어낼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모두 가치 있는 것들입니다.





멋 부린 문장보다 진심 담긴 문장





작가라는 관점으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면 거리를 둘 수 있게 되고 무게감이 덜어지면서 그 상황과 감정에 매몰되는 걸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꼬인 문장들을 다듬어나가면서 내 삶이나 사고의 꼬임도 풀어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게 되기도 합니다. 문장의 기본인 주어와 술어의 대응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연습이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이나 상황을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전체 글을 살펴보면서 일관된 하나의 관점으로 분명하게 정리해가는 훈련 역시 바른 해결책을 찾아가는 데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자신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되면 보여주기 위한 글이나 평가받는 글에만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글의 장점이자 단점이,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남들의 기대에 충족하려고 쓰는 글은 글쓰기의 즐거움과 희열을 빼앗아갑니다. 그런 글은 작위적인 글이 되고, 독자에게도 감정 과잉에 거부감을 들게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인 자신을 위한 글, 나라는 작가의 독자를 위한 글을 쓰셨으면 합니다. 쓰는 사람이 즐기면서 쓴 글이 더 감정에 솔직하고, 진심이 담기게 마련입니다. 멋 부린 문장보다 정직한 문장이 더 큰 감동을 줍니다. 조용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글은 바로 그런 글입니다.



자신이 작가라는 인식을 계속 간직하며 글을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작가는 단어를 쓰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여러분을 진정한 작가로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방송작가





물리학을 전공한 언론학 석사. 여러 방송사에서 예능부터 다큐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짧은 글의 힘’, ‘웹 콘텐츠 제작’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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