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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이슈 김정은 위원장과 정치 현황

김정은의 오랜 꿈 ‘두 국가 체제’…영구분단의 문 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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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정상회담 장소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남쪽 평화의 집에 걸린 두 개의 시계. 북쪽이 2015년 8월15일 공표한 ‘평양시간’ 탓에 남과 북의 시간이 30분 차이가 난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에서 “평양시간과 서울시간을 가리키는 시계가 각각 걸려 있는 것을 보이 매우 가슴이 아팠다. 북과 남의 시간부터 통일하자”며 ‘평양시간’ 철회를 지시했다. 그런 김 위원장이 지금은 “북남관계는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라며 남과 북 사이에 ‘분리장벽’을 쌓는 데 열심이다. 사진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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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헌법”에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제(규정)”했다는 17일 노동신문 보도는 남북관계를 같은 민족이 아닌 ‘국가관계’로 분리·정립하려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오랜 꿈’이 제도화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김정은 총비서는 ‘국가관계’ 개헌을 맡은 최고인민회의 첫날인 지난 7일 ‘김정은국방종합대학’을 찾아 “이전 시기에는 우리가 남녘해방이라는 소리도 많이 했고 무력통일이라는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관심이 없으며 두개 국가를 선언하고부터는 더더욱 그 나라를 의식하지도 않는다”라고 밝혔는데, 빈말만은 아니다.



김 총비서는 2012년 집권 이후 지금껏 남북관계를 ‘국가관계’로 전환하려는 작업을 꾸준하게 벌여왔다.



첫 시도는 광복 70돌인 2015년 8월15일 북쪽의 표준시를 30분 늦춘 ‘평양시간’ 제정 발표다. 분단 이래 늘 같던 남과 북의 ‘시간’을 나눠 한반도 8000만 시민·인민의 일상을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분리하겠다는 뜻이 담긴 조처다. ‘평양시간’은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취소됐는데, 이번 ‘대한민국=철저한 적대국가’ 헌법화를 계기로 복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번째 시도는 2017년 11월 “우리 국가제일주의”의 등장이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우리 민족제일주의”의 ‘민족’을 ‘국가’로 대체한 것이다.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인민대중제일주의” “자강력주의”와 함께 김 총비서의 ‘3대 통치이념’의 하나다. “우리 국가제일주의”의 천명 이후 북쪽은 중요 당·국가 행사에서 노동당 기보다 ‘공화국 기’를 핵심 상징으로 내세우며 ‘애국’을 강조해왔다.



세번째 시도는 2021년 1월 노동당 8차 대회를 계기로 흔히 ‘적화통일노선’ 또는 ‘남조선혁명론’이라 불려온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란 표현을 당규약에서 삭제한 일이다. 이는 북쪽이 “조선은 하나다”라는 기치 아래 남쪽을 ‘혁명의 대상’으로 여겨온 전통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남녘해방·무력통일, 지금은 전혀 관심 없다”는 김 총비서의 7일 발언은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김 총비서는 이런 오랜 터닦기 작업을 거쳐 2023년 12월 말 노동당 중앙위 8기9차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14기10차 회의를 통해 “북남관계는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라며 “헌법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표현 삭제”와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 개념 완전 제거”를 제안했다. 그리고 지난 7~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는 이를 새 헌법에 반영했다.



한겨레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1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14기10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 총비서는 이 연설에서 “헌법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표현 삭제”와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 개념 완전 제거”를 제안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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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김 총비서의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신노선은 이전의 ‘국가관계’ 재정립 시도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가장 적대적인”이라는 성격 규정이 결정적 차이다. 이전의 ‘평양시간, 우리 국가제일주의’와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삭제 조처는 ‘적대’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분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영구 분단’ 추구 측면에선 연속적이지만, 관계의 성격을 “가장 적대적”이라 규정한 점에선 단절적이기도 하다.



남쪽을 원한이 너무 깊어 같은 하늘을 함께 지고 살 수 없다는 뜻의 ”불구대천의 원쑤”라 폄훼하는 지경에 이른 현실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과 북이 서로를 “주적”이라 규정하며 대치·갈등하는 관계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남북관계에 오래 관여해온 원로들은 “우선은 적대성을 완화하는 데서부터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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