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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朝鮮칼럼] 추미애식 ‘평화주의’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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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에 등장한 모리오리·마오리 동족의 비극

평화·우정 제안만으로 전쟁을 피할 수 있나

추미애 의원의 낭만적 기대… 북의 핵, 군사 도발 막을 수 없어

민주당은 ‘모리오리당’인가… 역사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1835년 11월 19일, 뉴질랜드에서 동쪽으로 800여km 떨어진 채텀 제도에 총과 곤봉과 도끼로 무장한 마오리족 전사들이 상륙했다. 그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채텀 제도에 사는 모든 것을 잡아먹는 것이었다.

채텀 제도는 무인도가 아니었다. 모리오리족이 살고 있었다. 마오리족과 같은 혈통이지만 수세기 전 뉴질랜드 본섬에서 배를 타고 나가서 교류가 끊긴 후 다른 부족이 된 것이다. 바로 그 모리오리족 역시 마오리족이 잡아먹으려는 ‘모든 것’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문자 그대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모리오리족에게 마오리족 침략자를 물리칠 기회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선발대로 온 마오리족은 500여 명이었지만 모리오리족은 모두 2000명가량이었다. 비록 마오리족의 무기가 더 좋지만 조직적으로 저항했다면 이겨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리오리족에게는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전통이 있었”기에, “대표자 회의를 열어 맞서서 싸우는 대신 평화와 우정을 제안하고 물자를 나눠 주기로 결의했다.”

세계적인 석학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의 2장에서 그 비극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모리오리족의 평화와 우정의 제안은 전달되지도 못했다. 마오리족이 다짜고짜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며칠 사이에 모리오리족 수백 명이 살해당하고 잡아먹혔다. 노예가 된 이들도 결국 같은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자신을 잡아먹으려 온 이들에게 선물을 주려 하다니, 모리오리족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다이아몬드는 마오리족과 모리오리족의 환경적 차이가 세계관의 차이를 낳았다고 설명한다. 뉴질랜드 본섬에 살던 마오리족과 달리 작은 채텀 제도에 정착한 모리오리족은 궁핍한 수렵 채집민으로서 생존을 위해 ‘평화주의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모리오리족은 채텀 제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으며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전쟁을 포기했고 남자 신생아의 일부를 거세함으로써 인구 과잉으로 인한 갈등의 소지를 줄였다. 그 결과 전쟁을 모르는 작은 집단이 유지되었고 그들의 기술과 무기는 단순했으며 강력한 지도층이나 조직력도 없었다.”

국가도 전쟁도 종교도 사유재산도 없는 원시 공동체. 요컨대 모리오리족은 존 레넌이 ‘이매진’에서 노래한 그런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평화는 서구의 침략자가 아닌 같은 폴리네시아 원주민 집단에 의해 처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두 세기 전, 남반구의 어딘가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훈련을 더 빡세게 시키고 인간 고정대를 시키면 지저분한 치킨게임이 불러올 무모한 전쟁 위험을 막을 수 있나?” 지난 13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의 내용이다. 그러자 같은 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반박했다. “전쟁 위험을 훈련과 대비로 막지 그럼 뭘로 막습니까. 국제 대북 제재 위반하는 굴종 뒷거래 같은 걸로 막아야 한다는 겁니까.”

추 의원의 본심은 무엇일까. 인용된 문장 바로 뒤에 “군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가 풀어야 하고 외교를 발동해야 하고 대화 재개를 해야 하는 자신의 영역”이라고 덧붙인 것을 보면, 여전히 햇볕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핵 개발과 군사 도발에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이런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의 전반적 기조와 맞닿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내는 북한을 힐난하지 않았다. 그런데 평양에서 정체불명의 무인기가 전단지를 살포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우리 정부를 향해 ‘평화’를 외치고 있다. 당명을 모리오리당으로 바꿔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사실 모리오리족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당시 마오리족의 인구는 총 10만명에 달했지만 모리오리족은 2000명에 불과했다. 전쟁 경험은 전무했고 무기도 형편없었다. 그러니 손에 무기를 들고 눈을 희번득거리며 이 땅에 발을 디딘 저들에게 맞서 싸우는 대신, 평화와 우정을 제안하고 선물을 주면 모든 일이 잘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 기댈 수밖에 없었으리라.

우리는 그렇지 않다. 북한보다 인구가 많다. 경제력은 비교 불가능하며 재래식 군사력에서도 크게 앞선다. 하지만 스스로 모리오리족이 되면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남의 역사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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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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