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7 (목)

[사설] 과잉 쌀 비축 비용만 2조원, 누구를 무엇을 위한 낭비인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충북 청주시에 있는 한 공공비축의 벼 보관창고에서 관계자들이 온도 습도 등 벼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매입하고 되파는 과정에서 지출한 쌀 비축 비용이 1조7700억원에 달했다. 공공 비축 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최대치로, 2022년의 1조1802억원에 비해 1년 사이 50% 가까이 불었다.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수요를 웃도는 초과 물량을 정부 재정으로 매입하도록 의무화한 양곡관리법 때문이다. 사들인 쌀을 보관·관리하는 데 쓴 비용도 지난해 3942억원으로, 2005년 이후 최고치였다. 비축 비용과 보관 비용을 합치면 2조2000억원에 달한다. 쌀은 남아도는데 정부가 수매를 보장해 주니 농가의 쌀 생산은 크게 줄지 않고 재정 지출은 지출대로 늘어나는 악순환이 빚어지는 것이다.

올해도 쌀 생산량은 작년 대비 1.2%밖에 줄지 않아 수요 초과 물량은 12만8000t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보다 농식품부는 56% 많은 20만t을 매입하기로 했다. 1년 전보다 13.5% 낮은 수준에 형성된 시중 쌀값을 끌어올리려는 조치다. 정부 매입으로 일정 가격이 유지되니 농가도 쌀 경작을 줄이지 않는다. 그 결과 쌀 소비는 큰 폭으로 줄어드는데 정부는 매입 규모를 계속 늘리고 쌀 비축·관리에 연간 2조원 가까운 세금을 쏟아붓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도리어 쌀 의무 매입을 확대·강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야당이 강행 처리한 이 법안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으나 민주당은 재추진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쌀 매입·보관비로만 연간 3조986억원(2030년 기준)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잉여 쌀 처리에 농식품부 전체 예산의 16%에 해당되는 천문학적 세금을 쓰겠다는 것이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일인가. 이성을 잃은 득표 포퓰리즘일뿐이다.

남아도는 쌀의 악순환에서 탈출하려면 농가가 벼 재배 면적을 줄여 나가도록 유도하는 방법뿐이다. 정부의 쌀 의무 매입 물량을 축소하고 쌀 경작 농가가 다른 작목으로 전환할 때 제공되는 인센티브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적어도 쌀 소비가 줄어드는 만큼은 벼 경작 규모를 줄여가야 한다.

[조선일보]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