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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南 ‘당근마켓’ 세대와 北 ‘장마당’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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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양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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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은 평등한 사회와 민주주의를 발달시킨다. 고대 그리스를 보면 알 수 있다. 최초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일대 문명이다. 강 하구의 평지에 관개수로 농업을 통해 성장했다. 이런 농업 경제가 성장하려면 토지와 노동력이 필요하다. 고대 국가는 전쟁을 통해 농지를 확장하고 노예를 획득하며 경제를 발전시켰다. 이런 사회는 절대군주가 계급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는 수직적인 사회 구조를 띤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는 지리적 상황이 달랐다. 그리스는 산맥이 바다로 들어가는 땅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산맥과 산맥 사이의 공간은 넓지 않다. 그래서 하나의 제국보다는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성장했다. 각각의 도시가 교류하려면 높은 산맥을 넘거나 바다를 통해서 소통해야 했다. 높은 산을 오르내리는 것보다는 바닷길을 통한 소통이 훨씬 수월하고 경제적이다. 게다가 그리스 앞 바다에는 섬이 많다. 작은 배로도 섬을 중간 기착지 삼아 바다를 통한 교역이 가능했다. 이집트가 거대한 토지를 기반으로 한 하나의 독점 재벌 기업이었다면, 그리스는 작은 배를 여럿 가진 중소기업 무리 같은 경제구조였다.

좁은 계곡에서 만들어진 그리스 도시국가는 인구밀도가 높았다. 덕분에 주변에 물건 사주는 사람이 많아 상업이 발달했다. 상업의 기본은 거래다. 거래는 두 사람이 평등한 상태에서 조건을 흥정해서 약속을 만드는 행위다. 이런 평등한 대화 속에 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아테네에서 시장 역할을 한 아고라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거래하고 흥정하면서 수평적 관계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민주주의와 시장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상업은 ‘대화와 약속’이다. 그리고 상인들은 그 약속을 문서로 남긴다. 오죽하면 상업이 발달한 영국은 왕의 권력을 빼앗을 때도 왕과 계약해서 권력을 배분했을까. 그만큼 영국은 계약서가 힘을 가지는 사회였다. 이는 상인들이 만들어 낸 문화다. 영국은 이런 계약 문화를 해외까지 가져가 청나라와 계약해 홍콩을 빼앗았다. 영국에 이런 방식을 배운 일본은 조선을 계약으로 빼앗으려 한 것이다. 상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은 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조선은 5일에 한 번 장을 보는 나라였고, 쇄국 정책을 펼쳤던 나라다. 상업의 공간을 확장할 생각은 하지 않고 농업 경제에 머물렀던 나라다. 그렇다고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경제 규모는 정체되어 있는데 인구는 늘면서 점점 가난해지고 빈부의 양극화가 심한 사회였다. 노동력이 부족하니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게 자국민을 노예로 두는 노비 제도가 성행했던 나라가 됐다.

한 나라의 경제가 농업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영토 확장이 없으면, 하층민 소작농을 착취하게 마련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경제가 산업화하면서 도시 빈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공산화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농업 경제 국가에서 공산화가 많이 이루어졌다. 소련, 중국, 북한, 베트남의 공통점은 공산 혁명 당시 상업보다 농업이 주를 이룬 경제구조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농업 사회에서는 땅문서를 물려받은 사람만 부자가 되는 부의 대물림이 있다. 반면 상업은 거래를 통해 무(無)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구조다. 그래서 상업이 발달하면 아이디어와 거래로 부를 창출하며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만들어진다.

대한민국에 본격적으로 시장이 만들어진 장소는 6·25전쟁 피란민 때문에 인구밀도가 높아진 부산이다. ‘국제 시장’이 대표적이다. 이후 아파트가 보급되며 본격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가 만들어졌다. 상가가 조성되고 자영업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상업이 발달한 지는 불과 50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농업 경제와 조선 시대 유교 가치관이 남아있다. 가장 심한 곳이 정치권이다. 정치권에는 대화와 타협이 없고 자신의 대의명분만 내세워서 상대방을 공격한다. 조선 말기와 바뀐 게 없다. 이런 사고방식은 상업이 발달했을 때 변화 가능해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화와 타협과 거래와 약속의 훈련이다. 인터넷 발달로 시작된 ‘당근마켓’이 그런 훈련을 해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이웃이 땅을 사면 내 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의 농사꾼 마인드다. 장사꾼은 이웃과 내가 거래해서 둘 다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당근마켓에서는 내가 100만원을 주고 산 명품을 5만원에 팔기도 한다. 그런 거래가 가능한 이유는 사용하지 않는 중고 명품을 가지고 있느니 팔아서 5만원이라도 이익을 보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때 내 물건을 사주는 사람이 95만 원의 이익을 얻어서 배가 아파서 못 팔겠다는 사람은 없다. 이런 거래는 두 사람 모두 ‘윈윈’할 수도 있다는 경험을 준다. 이를 경험한 세대는 그렇지 않은 유교 농업 세대와는 다른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북한은 1990년대 극심한 기근을 겪는 ‘고난의 행군’ 시대가 있었다. 이때 북한 공산 사회의 배급 시스템이 붕괴됐고, 일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도입한 ‘장마당’이 허용됐다. 과거에는 공산당이 인민을 먹여 살려준다고 생각했으나, 장마당에서 돈을 벌어 사는 사람은 내가 장사해서 먹고 산다고 생각한다. 공산당은 해주는 것 없이 자릿세만 걷어가는 존재로 인식된다. 최근에는 자릿세를 높게 걷는 공산당원에게 대드는 사람이 생겼다고 한다. 장마당 시장이 북한 사회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장마당 세대는 대화와 타협이 조금은 더 쉬울 것이다. 미래는 대한민국의 당근마켓 세대와 북한의 장마당 세대가 이끌어 갈 것이다. 나는 그들이 영토 확장도 못 하면서 농사만 짓던 세대와는 다른 시대를 열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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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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