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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朝鮮칼럼] 부족 정치의 시대, 엄격한 법 집행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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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시대는 가고

세계는 지금 정치적 부족주의

미국·유럽, 亞·남미도 예외 없어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믿고 싶은 것만 믿게 하는 세상

극단적인 좌우 진영 정치

달리 묘수는 없다

공정한 법 집행으로 신뢰 줘야

조선일보

2023년 여름 발표된 제이슨 알딘(James Aldean)의 곡 “작은 마을서 그래 봐라(Try That in a Small Town)”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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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보고 욕하고, 얼굴에 침을 뱉고, 국기를 짓밟고 불태우는 짓거리, 작은 마을서 그래 봐라, 여긴 우리가 지키니까. 선 넘으면 알게 될 일, 바라건대 하지 말길, 할아버지께서 주신 총을 우린 갖고 있으니까.”

2023년 여름 발표된 제이슨 알딘(James Aldean)의 곡 “작은 마을서 그래 봐라(Try That in a Small Town)”의 노랫말이다. 동영상을 보면 카우보이 차림으로 읊조리듯 노래하는 알딘의 등 뒤로 미국 대도시의 격렬한 폭력 시위 장면이 깔린다.

문제의 동영상이 발표되자 거센 논란이 일었다. 총기 사용과 인종차별을 부추긴다며 뮤직비디오의 상영을 금지한 방송사도 있었다. 흑인에 대한 협박이란 항의가 빗발치자 알딘 측은 원본에서 애틀랜타 흑인 시위 장면은 삭제해야 했는데, 놀랍게도 이 곡은 순식간에 빌보드 핫 차트 1위에 올랐다.

컨트리송의 대유행은 열렬한 환호와 격렬한 반발을 일으키며 미국 사회를 두 진영으로 갈랐다. 바로 그 두 진영이 3주 앞으로 다가온 60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대결한다. 두 진영의 극한 대립을 보면 타협의 여지도, 상생의 지혜도 없어 보인다. 최초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수출하던 미국은 먼 옛날의 추억이 되어 버렸다.

정치적 양극화는 미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세계는 지금 종족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의 시대가 가고 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alism)의 시대가 왔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그러한 양상이 더욱 심하다. 북미, 서유럽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대만 등에서도 진영 간 정치 갈등은 부족 전쟁의 양상을 띤다. 정치 갈등은 사회제도나 경제정책에 머물지 않고 사생활의 미묘한 영역까지 번져서 젠더, 종교, 전통 같은 삶의 기본 가치를 놓고 벌어진다. 처음 만난 사람들도 두세 마디 말만 섞으면 금방 상대방의 진영을 지레짐작하는 세상이다. 정치 성향에 따라서 생각과 가치뿐만 아니라 패션과 말투, 심지어는 몸짓과 표정까지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치적 양극화는 대개 단순한 이분법으로 전개된다. 결국 “우리 부족은 선하고, 너희 부족은 악하다”는 진영 논리의 부족 전쟁이 되고 만다.

종족적 민족주의는 인류사에서 기껏 250년 전에 출현했는데 전체주의 독재자들이 악용하면서 잔혹한 세계 대전으로 표출됐다. 물론 지구 여러 지역에선 아직도 종족적 민족주의가 수그러들지 않았지만, 인류는 그 불합리와 위험성을 혹독하게 체험하고 절절히 학습했다. 문제는 디지털 정보 혁명과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이 불러온 탈진실의 시대에 갈수록 격해지는 정치적 부족주의이다. 날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은 정부를 불신하고, 전문가를 조롱하고, 법질서를 무시한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 부족의 추장만을 믿고 따라간다. 그 추장이 설사 특대형 범죄 혐의로 종신형을 받을 처지라도 열광적 팬덤은 줄어들지 않는다.

정치적 부족주의의 위험을 헤쳐 나갈 범인류적 지혜는 없는가? 1960년대 마오쩌둥이 “대민주”를 내걸고 일으킨 문화혁명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당시 중국 전 지역에선 사분오열된 군중 집단 사이에서 대규모 무장투쟁이 쉴 새 없이 터졌다. 중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무장투쟁이 4,300여 건이나 발생해서 대략 23만7000명이 사망했다. 당시 중국은 마오쩌둥의 지도 아래서 일사불란하게 자력갱생의 한길로 내달리는 듯했지만, 물밑에서 부글부글 끓던 진영 갈등은 실제적인 내전으로 터졌다. 어떻게 전체주의 중국에서 극한의 부족 전쟁이 벌어졌을까? 그 최고 수령이 앞장서서 법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달리 묘수가 있을 리 없다. 정부가 강력한 공권력으로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길밖에는. 파당적인 학자들은 자기편이 도심을 점령하면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라 들떠 칭송하지만, 극단의 진영 정치는 좌·우 군중 모두를 이미 부족 전쟁의 전사로 만들어 놓았다. 야만적 부족 전쟁을 막으려면 어떤 경우라도 법만큼은 어디서나 예외 없이 공정·엄격하게 집행된다는 사회적 믿음이 유지돼야 한다. 그런 믿음만 유지될 수 있다면 좌우 진영의 상호적 견제와 감시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발전을 돕는다. 거의 400년 전 영국 내전을 겪은 홉스가 설파했듯 부족 전쟁을 막으려면 모두가 공동의 계약으로 강력한 ‘리바이어던’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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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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