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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노벨평화상 수상 日 반핵단체, 이시바 ‘핵 공유’ 구상에 강력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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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의 무서움 알고 있다면 생각 좀 해라… 용서 못 한다”

조선일보

“핵무기 금지 조약 체결하라” 히로시마서 서명운동 벌이는 피단협 -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피단협)의 노벨 평화상 수상 다음 날인 12일 피단협 회원 오우치 마사코씨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관람객들에게 평화를 상징하는 종이학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이날 피단협은 일본 정부의 핵무기 금지 조약 체결 및 비준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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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피단협·일본어 발음 ‘히단쿄’)의 다나카 데루미(92) 대표위원이 12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신(新) 핵안보 전략’에 대해 “논외(論外)다. 분노한다”며 “핵의 무서움을 알고 있다면 ‘생각 좀 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비판했다. 논외는 토론할 가치도 없다는 의미다.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과 ‘미국과 핵 공유’를 내세운 이시바 내각의 안보 전략이 국내외 비판에 직면해 출발하기도 전에 흔들리고 있다. 일본 내에서 ‘비핵 3원칙’을 깨는 어설픈 구상이자 실현 가능성이 낮은 전략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데다,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선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발상이라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

다나카 대표위원은 12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전화에서 이시바 총리가 ‘현재 국제 정세에선 현실적인 수단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며 “조만간 총리와 면담할 예정인데, 그 자리에서 철저하게 토론해 ‘당신은 틀렸다’고 설득하고 싶다”고 했다. 피단협의 와다 마사코(80) 사무국 차장은 “일본 정부는 항상 ‘유일한 전쟁 피폭국’이라고 말해왔지만 핵을 공유하면 피해국에서 가해국이 될지 모른다”며 “우리는 (그런 판단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피단협은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의 피폭자들이 1956년에 결성한 조직이다. 핵무기 철폐를 주장해 노벨 평화상을 받은 피단협이 이시바 내각의 안보 전략에 정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핵을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영토에) 들이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지지하는 피단협 입장에서 이시바 총리는 일본의 소중한 가치를 깨려는 정치인인 셈이다.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10~12일 라오스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다른 국가들의 반대 기류 탓에 자신의 구상을 제대로 언급하지도 못했다. 모하마드 빈 하산 말레이시아 외교부 장관은 “우리에겐 이미 아세안이 있으며 아세안에 나토는 필요 없다”고 했다. 까으 끔 후은 아세안 사무총장도 “(이시바 총리의 구상은) 아세안 국가에서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포스트는 “아세안에는 무역·경제 파트너인 일본이 필요하며, 지역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군사 동맹국 일본은 필요 없다”고 했다.

일본과 함께 쿼드(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4국이 결성한 안보 협의체) 멤버인 인도도 “우리는 어떤 국가와도 (안보) 조약을 맺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시아판 나토에 참가할 의향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외교를 추구하는 아세안 국가들에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돌릴지 모르는 이시바의 구상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외 싸늘한 여론에 놀란 이시바 정권은 아시아판 나토와 핵 공유를 황급히 ‘봉인’하는 분위기다. 이시바 총리는 4일 신임 총리의 소신을 밝히는 첫 국회 연설에서 두 주제를 언급하지 않았고, 이달 27일 총선거의 자민당 공약에도 넣지 않았다. 이시바 총리는 이달 초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우호국 정상과의 취임 후 첫 전화 통화에서도 이를 화제로 꺼내지 않았다.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은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미래의 아이디어 중 하나”라며 “국가 간 방위 의무를 지우는 기구는 아시아에서 설립하긴 꽤 어렵다”고 했다. 나카타니 겐 방위상도 8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첫 통화에서 ‘미일 동맹의 강화’를 논의하면서 이 주제는 뺐다.

신념을 좀처럼 굽히지 않는 ‘안보 오타쿠(골수 마니아)’ 이시바 총리가 이달 말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에 다시 지론을 추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전망도 있다. 아시아판 나토와 핵 공유를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방위상 출신인 이시바 총리가 애초에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것이다. 최근 이시바 총리는 오노데라 이쓰노리 자민당 정조회장에게 아시아의 새로운 안보 태세를 논의할 조직을 당내에 만들라고 지시했다. 27일 중의원(하원) 선거 승리로 당내 기반을 탄탄하게 다진 뒤 다시 지론을 관철하려는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오노데라 정조회장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자민당의 새 조직은) 아시아 안보에서 어떻게 하면 지역의 연결을 강하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판 나토

일본 총리에 지난 1일 오른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신임 총재의 안보 구상 중 하나. 미국과 유럽을 아우르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같은 집단 방어 체제를 아시아에 만들고 그 연장선상에서 일본 내 미국의 전술핵 반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일본이 원칙으로 삼아온 ‘비핵 3원칙(핵을 보유하거나 만들거나 일본에 들이지 않는다)’과 상반돼 논란이 일고 있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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