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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딸·손녀 먼저 보냈던, 휘트니 휴스턴 어머니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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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시 휴스턴(왼쪽)과 딸 휘트니 휴스턴(오른쪽) 이 지난 2010년 9월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 동반 참석했다. 시시 휴스턴은 지난 7일(현지시각)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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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스타 휘트니 휴스턴을 세계적인 디바로 키운 엄마이자, 본인도 그래미상을 두 번 수상한 가수이기도 했던 시시 휴스턴이 7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



에이피(AP)와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시시 휴스턴이 뉴저지주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고 보도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던 고인은 호스피스 돌봄을 받았다.



시시 휴스턴의 생애에는 영광과 비통이 교차했다. 1933년 뉴어크의 공장 노동자 가정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다섯살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1960년대 알앤비(R&B) 보컬그룹 ‘스위트 인스피레이션’의 멤버로 활동하며 데이비드 보위, 지미 헨드릭스 등의 노래 수백 곡에 코러스로 참여했다. 그룹을 탈퇴하고 솔로 활동에 나선 이후에는 아레사 프랭클린, 엘비스 프레슬리 등 당대 최고 스타의 백업 가수로 명성을 얻었다.



가스펠 음악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도 활동해 온 그는 1996년 앨범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 1997년 ‘히 리데스 미(He Leadeth Me)’를 발매해 그래미상 전통 솔 가스펠 부문에서 두 차례 수상했다.



딸 휘트니 휴스턴(1963∼2012)을 세계적인 디바로 키운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59년 엔터테인먼트 경영자 존 러셀 휴스턴과 재혼해 1963년 휘트니 휴스턴을 낳았다. 딸은 음악적으로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엄마인 그는 딸의 연예계 진출을 만류했다.



하지만 딸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환호를 막을 수 없었고, 나중에는 딸의 공연, 녹음, 티브이, 영화 일정 등을 함께 소화했다. 시시 휴스턴은 딸의 공연 무대에 종종 올랐으며,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 ‘하우 윌 아이 노우(How Will I Know)’와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I Wanna Dance With Somebody)’ 같은 히트곡들의 백업 보컬을 맡기도 했다.



딸이자 동료였던 휘트니 휴스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의 인생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난 2012년 휘트니는 엘에이(LA) 베벌리 힐스의 자택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코카인 흡입 후 심장마비로 알려졌다. 3년 후인 2015년에는 휘트니 휴스턴의 딸이자 시시 휴스턴의 손녀인 크리스티나 브라운도 조지아주 자택 욕조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6개월 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손녀는 결국 사망했다. 사인은 약물중독으로 밝혀졌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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