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작가가 등단 15년 만에 첫 역사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펴냈다. 2003년 편집자로 업무차 창경궁을 다녀간 게 시작이었다. 당시 채권자들 피해 집을 옮기는 등 “개인적으로 우리 집은 붕괴되어 있었다”(작가의 말)던 때다. 김 작가는 3일 한겨레에 “가장 앞선 미래로서 ‘산아’라는 인물을 이 모든 기억의 전수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산아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졌다”고 말했다. 사진 ⓒ신나라, 창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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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l 창비 l 1만8000원
소설가 김금희의 이번 주 신작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는 그간 보지 못한 김금희의 문풍이 적지 않다.
먼저 이야기가 가장 길다. 작가 스스로 밝혔듯, 이전 어떤 작품보다 “폭넓고 긴 시간대”를 누빈다. 통상 표현대로라면 ‘스케일’인데, 여기 스케일은 곧 디테일이다. 순간순간을 감당한 인물들 심사의 섬세한 재현으로 시간은 장대하기보다 농밀하다.
19세기부터 2023년까지를 아우르는 팩션이다. 15년차 작가의 첫 역사소설 되겠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의 그늘이 현재까지 드리워져 있다. 역시 디테일로, 허구지만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허구일 리 없다고.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지만, 누구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당장 창경궁에 가보아야 할 것 같다.
추리의 양식을 덧댔다. 두서너 반전을 보게 될 것이다. 아니, 인물별로 소소한 반전은 더 많다. ‘사람이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확인도 반전이라면 반전일 터(그 인물에 결국 욕하고 말았다). ‘장르’의 ‘센티멘탈도 하루 이틀’이지, 라고 할 독자들이 있으려나. 이 소설은 지극히 문학적이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서 서울 창경궁에 위치한 대온실 보수공사를 맡는 바위건축 사람들의 이야기가 터파기라면, 대온실을 지은 이, 대온실 건립 전후부터 일대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출토’되길 기다려온 지층 격이다.
실제 창경궁엔 1909년 국내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 세워진다. 이태 전 즉위한 순종을 창덕궁에 유폐시키고, 조롱인지 위로인지 이토 히로부미가 ‘허약한 왕의 운동과 정신 위로’를 명분 삼아 동물원과 함께 식물원을 들여놓았다. 일국의 왕궁이 유원지로 전락한 배경이다. 그럼에도 대온실은 일제 잔재치고 드물게 “살아남았”다. 2004년 복원되어 옛 모습 그대로다.
소설은 식물원 설계자인 후쿠다 노보루(1927년 몰, 실존 인물 후쿠바 하야토가 모티브다)와 2023년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 작성 업무를 맡게 된 30대 중반 여성 강영두, 섬 출신 영두가 중2 때 서울로 잠시 유학 와 신세 졌던 창경궁 옆 낙원하숙 주인 할머니 안문자 셋의 삶이 얽히고설킨다. 저마다 좌절과 굴욕, 결벽과 고립, 오해의 상처를 가진 자들이다. 그럼에도 삶은 그것들을 퇴적하여, 딛고 품고 “살아남”는 건축물이라는 믿음을 준다.
4살 때 엄마를 잃었는데도 영두는 밝고 활기차다. 외벌이로 넉넉지 않던 아버지는 영두 외할머니와 절친했던 서울 원서동 할머니 안문자에 영두를 의탁한다. 강화 석모도가 연륙되지 않아 고교 진학하려면 다들 강화나 인천으로 유학 가던 때다. 성격도 성격이거니와, 미래에 대한 열망이 없지 않았으니 서울살이는 외롭고 물설긴 해도 차츰 감당이 되어 간다. 첫사랑도 어지간히 풋풋하였으니, 그게 영두다. 2003년, 하숙집 한방을 쓰던 안문자의 손녀 리사와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억울하게, 속수무책으로 어떤 사건에 휘말리기 전까지가 그랬다. 리사라는 인물, 영두가 나누는 대화, 도피하고 만 영두, 그와 달리 어른 영두를 이모라며 따르는 친구 딸 산아가 친구와 학교에서의 곤경을 감당하려는 마음이 섞여 파동하므로, 자문하게 된다. 삶은 꼭 오명과 억울을 대가로 요구하는가, 그때 나는 어떻게 했던가, 어떻게 구원되는가.
프리랜서 영두가 기록하게 될 백서 대상이 창경궁 부속이란 사실을 알고 주저했던 이유가 바로 그해 그 사건이다. 인간에 대한 불신, 도리 없는 상처가 트라우마로, 삶의 문법으로 되살아날 것만 같다. 물경 20년 전 일인데도 말이다.
보수공사 중 대온실 아래 매립되어 있던 지하 공간이 발견되면서 소설은 역사성을 증폭시킨다. 안문자의 베일 속 과거사가 드러나는 경로와 결부된다. 지하에서 인골이 확인되면서 절정으로 치닫는바, 건축소 직원들과 영두는 난처해지고, 몇 년 전 죽은 문자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처럼 성큼 불려 나온다.
문자는 해방 뒤 잔류 일본인이었다. 1935년 도쿄에서 태어난 마리코. 대온실 초기 때 허드레꾼으로 취직했다 윗사람 눈에 들어 일본서 공부하게 되고 아내도 얻은 박목주가 그의 새 아버지다. 대온실 공무원이 된 박목주 따라 남동생 유마까지 1943년 서울로 왔으나 이내 해방을 맞고 엄마는 홀로 환국해버린다. 조선선 ‘기어나가라’ 하고 일본선 ‘오지 말라’ 하던 때, 배다른 동생과 남겨진 일본인 소녀는 막 10살이었다. 그리고, 6·25 전쟁이 터지며 박목주가 두 아이를 살리고자 잠시 숨긴 데가 바로 대온실 지하였다. 그렇다면 2023년 나온 사람뼈는 누구의 것인가.
조각조각 상이한 개인사로 큰 형상을 구체화하는 모자이크가 바로 역사라는 게 김금희의 세공으로 잘 감각되는데, 그 형상은 슬프고도 다감하다. 문자를 살린 자가 소래포구에서 생선 팔던 영두 외할머니다. 문자를 살리려던 자가 의붓아비 박목주다. 안문자가 상처 입고 스스로를 유폐하려는 어린 영두를 살리려 애쓴 까닭이고, 어른 된 영두가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죽은 안문자의 삶을 온전히 기억하고 복원하려 애쓰는 까닭이다. 부러 생략해보되, 안문자의 유산을 두고 후대가 진행할 소송은 이미 화제가 될 수 없다.
굵직한 서사에 작가가 곁들여둔 여러 삽화만으로도 소설은 제값을 한다. 첫사랑과 영두의 이별법이라든지, 섬 소녀의 악기 실기 일화라든지 도처의 유머가 살갑고, 인천 출신 작가가 “공부해 썼다”(한겨레 인터뷰)는 석모도 사투리는 마냥 정겹다.
하지만 소설의 진짜 미덕은 서사도 삽화도 아니겠다. “이야기라는 것이 사라져버릴까” “물으면 오히려 입을 닫지 않을까” 삼가고 배려하고 애면글면하는 인물들의 반복적 태도. 말하자면, 1951년 1월의 겨울 지하에서 나눈 남매의 대화 방식, “누나 배고프지?” “너 배고프지?” “누나 무섭지?” “너 무섭지?” “누나 눈물 나지?” “너 눈물 나지?”…같이 이야기도, 숨도 잇고 이어져야 하리란 애절함에 있지 않을까. 상처도 어떻게 미래가 되는가, 묵직한 의제를 던지기 위한 작가의 태도 같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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