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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해된, 몸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다
크리스티나 크로스비 지음, 최이슬기 옮김 l 에디투스 l 1만8000원
오르막에서 자전거 앞바퀴 살에 나뭇가지가 걸렸다. 2003년 10월1일 자전거 위의 사람은 얼굴을 아래로 한 채 노면에 처박혔다. 5번과 6번 경추가 부서졌고, 부러진 뼈는 척수를 긁었다. 턱뼈는 깨지고 오른쪽 완와뼈는 다중 골절되었다. 한 달의 입원과 5개월간의 재활 기간을 거쳐 ‘1인 돌봄’ 상태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웨슬리안 대학교 영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크리스티나 크로스비는 쉰 살을 갓 넘긴 날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몸을 그에게 주었고, 그는 그것을 ‘undone’(잠기지 않은, 끝나지 않은, 완전 실패한)이라고 칭했다. ‘와해된’ 몸은 끝없이 고통을 느꼈다. “끔찍한 것은 몸을 타고 흐르는 고통스러운 전류”였다. 비슷한 것도 느껴본 적이 없는 고통이었다. 약에 취했어도 통증만은 전기처럼 몸을 타고 다녔다. 피부는 윈드서핑의 잠수복처럼 ‘느낌’을 가했다. “지금은 납덩이의 시간―/ 기억되리라, 끝내 살아남는다면,/ 얼어붙은 사람이, 눈을 생각해내듯―처음의 한기―다음의 혼미―그리고 내려놓음으로―”(헌시로 쓰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
모르는 몸은 공포였다. “이제 나는 젠더가 없다. 대신 내게는 휠체어가 있다.” 그의 몸은 사고 전에도 일관성으로 따질 수 없었다. 젠더 연구자이자 레즈비언인 크로스비의 휠체어에 앉은 몸은 남성으로 오인되곤 했다. “나는 젠더가 없을지 모르지만, 휠체어에는 젠더가 있다.” 그를 남성으로 오인하고 부른 사람들은 ‘지나치게’ 사과하곤 했다. 그는 원래 젠더에 신경 쓰지 않았고 몸은 그의 생경함의 대상이었다. “내가 내 몸을 얼마나 생경하게 여기는지, 내 사람을 얼마나 생경하게 느끼는지에 대해 아마 당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으리라.”
크로스비의 13달 차이나는 오빠는 20대에 다발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그가 사고가 나고 얼마 되지 않은 때, 오빠의 병은 많이 진척되어 ‘사지마비’ 상태였다. 어린 시절부터 쌍둥이라고 생각하면서 놀았던 오빠와의 ‘사지마비’라는 공통점은, 그에게 거울의 공통편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돌봄 인력을 언제나 옆에 두어야 하는 상황에서의 재정 압박, 이제는 서로 몸을 만져주는 게 불가능함에도 감정적 의지처가 되어주는 파트너, 그와의 연애사, 장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용변을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무력감 등을 열정적으로 전한다. 음성인식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썼다. 책 끝부분에서 그는 연필을 잡고, 책을 넘길 정도가 된다. 크로스비는 2021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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