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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독일 극우의 승리와 ‘한표의 무게’ [특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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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달 11일(현지시각)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소도시 오라니엔부르크 광장에서 열린 ‘독일을 위한 대안’(AfD) 유세 현장. 유세장과 그 옆의 ‘극우 반대 집회’ 참가자들을 무지개가 감싸고 있다. 장예지 베를린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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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지 | 베를린 특파원



지난달 11일, 옛 동독 지역을 휩쓸고 있는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유세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주의회 선거를 앞둔 브란덴부르크주의 한 소도시를 찾았다. 독일을 위한 대안 정치인들의 연설을 듣기 위해 300여명이 모인 오라니엔부르크 광장 맞은편에선 독일을 위한 대안의 집권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극우 반대 집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 사이 2차선 도로에 배치된 경찰 수십명은 삼엄한 눈빛으로 좌우를 살폈다. 내내 흐리던 하늘은 결국 거센 소나기를 쏟아냈고, 그 뒤 차오른 무지개만이 애꿎게도 유세장과 극우 반대 집회 현장을 잇고 있었다.



9월 들어 연달아 치러진 독일의 주의회 선거 결과는 독일을 위한 대안이 어느새 주류 정치 세력의 일부가 된 현실을 보여줬다. 9월1일 튀링겐주 선거에선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이 정당이 득표율 1위를 했고, 작센 지역에선 득표율 30.6%로 기독교민주연합에 1%포인트 남짓 뒤진 2위를 기록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속한 사회민주당의 오랜 텃밭이었던 브란덴부르크주 선거에서도 이 당은 득표율 29.2%로 2위에 올랐다.



유세 현장에서 만났던 독일을 위한 대안 지지자들은 이번 선거 결과를 어떻게 평할지 궁금했다. 흔히 극우 정당 지지자는 나치식 경례를 하거나 폭력성을 드러내는 이미지로 정형화되기 쉽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나는 극우나 나치가 아니”라고 항변하며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을 표출했다. 특히 일상에서 느낀 사회적 문제를 늘어난 이민자와 결부해 정책의 실패로 비판하기도 했다.



진(24)은 “학교나 직장에서 우리는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일할 노동자도 충분치 않다. 정부는 많은 세금을 떼어 가지만 이걸 난민들에게 쓰고 있다. 독일은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 정당을) 비판할 순 있지만, 지지자 전체를 나치라고 부르는 건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50대인 마스니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는 “나는 한 가족의 가장일 뿐 나치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너무 많은 망명 신청자들을 받아들인 반면 아이들은 현재 학교에서 충분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이런 불만을 파고들어 기존 정치나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강화하고, 자신들을 ‘유일한’ 대안 세력으로 내세웠다. 호기심에 유세장에 왔다는 10대 청소년 마르크 나츠(16)는 “이 당의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걸 말해준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결책을 주진 않는다”고 촌평했다. 그럼에도 진은 “독일을 위한 대안을 약 30%가 지지하고 있다. 이들을 무시해선 안 된다. 그럴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다수 독일 언론은 극우의 승리 원인을 두고 각종 분석을 내놓으면서도 이들의 집권 가능성엔 거리를 두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극우 막아내기’를 선거 전략으로 삼았던 정당들은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이 정당을 배제한 채 연립정부 구성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 당에 지지를 표했던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고, 더 나은, 건강한 대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민심을 잃고 있는 현 정치 세력이나, 이민자나 무슬림 등 특정 집단에 모든 문제를 전가하는 극우 사이에 선 독일 시민이 지닌 한표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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