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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엄마 없이 맞은 첫 추석 [양희은의 어떤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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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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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양희은 | 가수



엄마 없이 맞은 첫 추석이다. 식구들이 더 자주 모이게 되는데 다 손주들 덕이다. 제일 어린 아가의 두돌맞이, 여름방학 맞아 캐나다에서 나온 희경이 손주들 덕에 모이고, 세상 소원이 뷔페 한번 먹어보는 거라 해서 호텔에서 또 모이고…. 먹고 싶은 게 무어냐고 물으니 문어숙회, 게찜, 족발, 육회, 고사리·도라지나물, 열무김치 등등…. 만나서 외식을 하면 제일 인기 좋은 메뉴는 물냉면에 불고기였다. “여기 오니까 공기가 나빠서 목이 따끔거려도 좋아. 너무너무 좋아, 다 내 편이잖아?” 알지,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우리도 떠나 살던 때가 있었으니까!! 엄마 방을 그대로 두어서 들어가 책도 읽고 티브이도 보고, 개들과 누워도 본다. 떠나신 지 여덟달이 넘었는데, 그 방에선 아직도 엄마 냄새가 난다. 은은하면서도 좋은 냄새! 도대체 어디서 나는 걸까? 희한해라. 캐나다 식구들은 할머니 방에 들어와 한바탕 눈물 바람을 했다. 유난히 아기자기한 물건을 좋아해 양껏 모아온 할머니의 애장품 중 갖고픈 것들 고르라고 했는데 17살짜리 증손녀는 자기가 두고두고 쓸 물건 세가지만 골랐다. 그 아이가 쓴 편지를 잠깐 소개한다.



‘증조할머니께! 할머니, 저는 할머니가 좋은 곳에 계신다는 걸 알아 너무 슬퍼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네요. 눈알이 아플 정도로 정말 많이 울었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모든 후회와 죄송함이 밀려와요. 재작년에 화실에 절 초대하셨을 때 왜 저는 그렇게 이기적이었을까요? 저랑 같이 화실에 가고 싶으셨음을 잘 알았는데 왜 신나서 들뜨셨던 할머니를 거절했을까요? 화실에 관심이 없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할머니랑 보내는 시간이 더 중요하단 걸 왜 몰랐을까요? 그날 할머니와 화실에 같이 갔었으면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계속 마음에 걸려요. 제 거절에 별말씀 없으셨는데, 그게 더 아프게 다가오네요. 너무 죄송해요. 좀 더 자주 웃으며 이것저것 대화 나눌 걸…. 해드리고 싶은 말, 여쭈어보고 싶은 질문들이 산더미예요. 조금 더 있다 가시지. 6월에 한국 나간다고 크리스마스 카드에 써놨는데…. 할머니 장례식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며 슬퍼하러 오셨는지. 그 얘길 들으니 할머니께서 인생을 참 멋있게 사신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의 삶을 감싸셔서 가시는 날까지 멋있게 가셔서 참 존경스러워요. 저도 죽으면 할머니처럼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러 와 주면 좋겠어요. 할머니! 우리 가족들 다 할머니 곁에 따라 올라갈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셔요. 다시 만날 때 제가 어떻게 살다 왔는지도 다 얘기해 드릴게요. 보고 싶고, 감사하고, 사랑해요. –한지인.’ 눈물겹고 감동스러운 긴 편지였다.



나는 식구들, 매일 보는 ‘여성시대’ 팀과 티브이 ‘28청춘’ 팀, 내 일을 도와주는 이들 빼고 만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편지를 통해 숱한 이들과 만나고 공감하며 함께 울고 웃는다. 최근에 내 마음에 들어온 사연은 이랬다. 오늘 진짜 큰일 날 뻔했다는 남편 말대로 한겨울 길에서 넘어진 다음날부터 영 못 일어나더니 직장암까지 발견되어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얼굴 밑으로 움직임조차 없고 심한 욕창으로 역한 냄새와 오장육부의 출혈에다가 요양병원비도 비싸서 앞날 창창한 자식들에게 걱정과 부담 주는 게 미안했다. 면회 때마다 남편 뺨을 어루만지며 이제 그만 편히 가라고 풀린 동공을 마주 보며 눈으로 말하곤 했는데 그날 영감이 알아들었는지 콧줄로 들어가는 모든 걸 게우고 떠나더라. 생각할수록 쓸쓸하고 안타깝고…. 이제 더운 여름도 가고 가을이 오니 마음이 덧없이 쓸쓸하고 허전하다며 ‘여보, 미안해요. 그래도 전,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게 보내고 울기도 하고 마음 허하고 모든 것이 답답했는데 신기하게도 시간은 가고 계절이 바뀌더라는 사연이었다.



누군들 예외가 있을까? 아무리 건강에 자신이 있어도 나이 듦에 따라 뜻밖의 일을 겪게 되는 데야. 내 남편도 지금 병원에 있다. 18살짜리 노견도 일주일에 사흘 피하수액 맞히러 동물병원에 간다. 산다는 일의 고단함 말해 무엇하리…. 추석이 반갑지 않구나. 넓은 집에 개 두마리와 함께 나는 추석명절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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