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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노량진에선 장사도 투쟁”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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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구호를 외치며 팔뚝질을 하던 까무잡잡한 팔뚝이 도마 위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사진 이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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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구호를 외치며 팔뚝질을 하던 까무잡잡한 팔뚝이 도마 위에서 바삐 움직인다. 투쟁조끼 걸치던 몸엔 앞치마를 둘렀다. 마이크를 잡던 손으로 국자를 잡았다. 10년 만이다. 그간 주방이라고는 2만5천 볼트 고압전류 흐르는 육교 위 농성장의 간이 화구가 전부였다.



옛 노량진수산시장, 수도권에 안정적으로 수산물을 공급하려 서울시가 개설한 공공도매시장이다. 세계 최대 규모에 경매와 도매, 소매, 초장집까지 한곳에 모여 장관이었지만 2001년 관리권을 수협중앙회에 팔아넘겼고 수협은 시장을 현대화하겠다며 철거한다. 상인들은 즉시 반발했다. 수백명 용역이 시장을 들락날락했다. 손님이 들어오던 샛길까지 용역이 득시글거렸다. 수산물 실은 트럭이 들어오던 널찍한 도로와 주차장은 용역을 가득 실은 버스가 즐비했다. 수조는 깨졌고, 활어가 쏟아지는 풍경이 반복된다. 마스코트였던 고양이는 집행 과정 중 어찌 됐는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폭력을 수차례 겪었다. 상인을 다 수용할 수 없는 신시장을 지어놓고 케이지(우리)처럼 상인들을 욱여넣으려 했다. 철거된 옛 시장 부지에는 카지노를 지으려 했으나, 현재는 축구장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걸 거부하고, 시장의 운명을 상인들 스스로 결정하게 해 달라 목 놓아 외쳤던 이들, 진정한 시장의 주인들은 거리의 삶을 택했고 꼬박 10년을 싸웠다. 돌아온 것은 수십억원의 손배소였지만 상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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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회센타’. 사진 이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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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장 오래된 투쟁현장 중 하나가 된 옛 노량진수산시장 상인회는 긴 호흡으로 싸우려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고, 그렇게 얼마 전 노량진역 사거리 대로변에 ‘노량진회센터’를 차렸다. 지난 10년 그토록 바라던 시장의 ‘공공운영’을 자신들의 가게로 시범 삼아 보여주겠다는 당찬 포부가 담겼다. 함께 돈을 모아 출자했고, 농성장과 가게 당번을 번갈아 하며 투쟁과 노동의 일상을 엮었다. 누구 하나 노는 이 없이 또 누구 하나 소외되는 일 없이, 10년을 싸워온 동지애로 엮여 ‘공공운영’의 활력으로 북적거리는 새로운 가게를 보란 듯이 차렸다.



테이블 한 편에 작게 안내문이 있다. “실수가 있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신 최고의 회를 저렴한 가격으로,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겸손의 표현일까. 10년의 시간, 손이 굳었을까 내심 걱정이 되셨나 보다. 하지만 나온 상차림을 보니 역시나! 회는 저렴하고 푸짐하다. 반찬은 과하지 않게, 주력 메뉴에 집중한 모양새다. 수산시장의 상차림이란 이런 것이다. 기교보다는 원물에 집중해 두툼이 썰어낸 한 접시의 풍성함. 작은 생선으로 한 그릇 모양내려 얇게 썰어내는 횟집들하고는 비교가 어렵다. 무엇이 가장 좋은 생선인지, 어떻게 썰어야 맛있는지, 저렴한 가격에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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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는 저렴하고 푸짐하다. 반찬은 과하지 않게, 주력 메뉴에 집중한 모양새다. 수산시장의 상차림이란 이런 것이다. 사진 이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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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변했다지만, 회칼 잡던 주름진 손은 변하지 않았다. 간 맞추던 혀의 노련함도 여전하다. 상인들은 투쟁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 운영의 주체가 되어 노량진수산시장의 옛 명성을 살리겠다는 목표는 여전하다. 긴 호흡의 투쟁이 시작됐을 뿐이다. 개업식 날, 마이크를 잡고 축사인지 발언인지 모를 말을 얹었다. “장사도 투쟁이지요? 우리 승리합시다!” 요즘 세상에 소주가 3000원이란다. 대신 많이 팔아 많이 남기시겠단다. 시장을 사랑하던 이들이, 문지방 닳도록 이 가게를 오가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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