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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우크라 이겨야 하는데 확전은 안되고…아무것도 못하는 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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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재단 (staff@peacefoundation.or.kr)]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하 러-우 전쟁)이 발생한 지도 벌써 2년 6개월이 지났다. 개전 초기만 하더라도 러시아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항전 의지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무기 지원 등으로 러-우 전쟁은 교착 상태로 빠져들면서 장기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개전 이래 현재까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남부의 헤르손과 자포리자 지역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영토의 20% 정도를 점령한 상태다. 전황의 주도권을 잡은 러시아는 8월 들어 우크라이나의 동부 요새인 토레츠크 인근까지 진군했으며, 도네츠크 지역의 주요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포크롭스크를 함락하기 일보 직전에 있다.

만약 우크라이나군의 핵심 병참기지가 있는 포크롭스크가 함락된다면 우크라이나군 전체 보급이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개전 이후 미국 등 서방의 무기 지원에 힘입어 러시아의 공격에 맞서 동부 지역과 남부 지역의 방어에 주력해 왔던 우크라이나군은 8월에 들어와 전쟁 개시 최초로 러시아 본토인 접경지역의 쿠르스크주를 기습 공격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8월 27일 키이우에서 열린 '2024 독립 포럼'에 연사로 나선 시르스키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은 우크라이나군은 현재 러시아 쿠르스크주 수드자 지역을 포함한 여러 지역의 마을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이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 본토 지역의 면적은 1294㎢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한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문제

그동안 소강상태의 교착 국면을 보여왔던 러-우 전쟁이 8월 들어와 양국의 공격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과 일부 지역 점령을 계기로 나토 동맹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다양한 무기 사용과 관련하여 러시아 본토를 깊게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문제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나토 주요 국가 간에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2024년에 들어와 미국을 비롯하여 나토 주요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탄도미사일 에이테큼스(ATACMS), 영국과 프랑스는 양국이 공동으로 개발한 순항미사일 스톰 새도우(storm shadow)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다. 다만, 이들 무기는 서방이 지원하는 다른 종류의 무기와는 달리 우크라이나 영토의 방어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으로 러시아 본토 공격용으로는 쓸 수 없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계기로 장거리 미사일의 전략적 활용도가 커지면서 전쟁 당사국과 무기 지원국 간에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문제와 그 전략적 함의를 놓고 논쟁이 일어나면서 이 문제는 전쟁의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전쟁연구소(ISW)의 보고서에 따르면,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이 해제된다면 우크라이나가 잠재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러시아의 군사 목표물과 준군사 목표물이 245개 이상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는 비행장과 탄약고 등의 대규모 군사 기지와 지휘 통제 센터, 물류센터, 정비 시설 등이 포함된다.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문제를 바라보는 관련국들의 입장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문제가 전황의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이를 바라보는 전쟁 당사국과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 주요 나토 동맹국들의 입장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본토 공격 이후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을 풀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그는 서방이 무기 사용 제한을 풀어줬다면 굳이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위험한 선택을 취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우리가 우위를 점하고 전쟁을 공정하게 끝내기 위한 조건을 만들려면 적 후방 깊숙한 곳의 주요 목표물들을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 개시 처음으로 본토 공격을 당한 러시아는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문제에 대해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러시아는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공격을 돕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해제 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8월 27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미국 등 서방 국가가 러-우 전쟁을 확대하고 지원 무기의 러시아 영토 타격을 허용해 불씨를 키우려 한다고 말하면서 그는 핵무기 사용을 규정한 핵 독트린을 언급하며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발끈했다.

나토 동맹국들은 8월 28일 나토-우크라이나 이사회를 열어 최근 우크라이나의 인프라에 대한 러시아의 무차별 공격을 강력히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의 방어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회의를 주재한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가 방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급 증가와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며, 최근 러시아의 침공을 계기로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재확인했다.

또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장비와 군수품을 계속 제공해야 하며, 이는 우크라이나가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나토의 전략적 파트너인 유럽연합의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8월 30일 모든 유럽연합 국가가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을 제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제한 해제 결정은 회원국의 개별적 결정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하여 체코는 우크라이나가 유엔 헌장에 따라 서방이 지원한 무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상 제한 해제를 옹호했다. 에스토니아와 폴란드, 그리고 영국도 제한 해제를 찬성했다.

다만, 영국은 미국이 반대하고 있어 영국이 일방적으로 이를 찬성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스톰 새도우 미사일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이탈리아는 나토와 이탈리아가 러시아와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러시아 본토 목표물을 공격하는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해제에 반대하고 있다. 타우러스 공대지 순항미사일을 지원해 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거절한 독일도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해제를 반대하고 있다.

프레시안

▲ 8월 27일(현지시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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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종전과 연쇄 연루를 둘러싼 서방의 딜레마

교착 상태에 빠진 러-우 전쟁이 장기전 양상을 보임에 따라 전쟁의 피로감이 쌓이면서 우크라이나 국민과 관련 국가들의 종전 협상과 평화 회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황 국면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한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문제를 바라보는 관련국의 엇갈린 입장 노출은 이 문제에 대한 각국의 전략적 의도의 일단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먼저, 전쟁의 피해와 피로도가 가장 큰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및 용도 해제가 전쟁 종식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8월 27일 '우크라이나 독립 포럼'에서 4단계로 구성된 승전계획 구상을 밝히면서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공격은 1단계로 이미 완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29일 야간 연설에서 지금 즉시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공격 제한을 해제하는 결단력 발휘가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를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을 끝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미국의 결단을 촉구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도 미사일 사용 제한은 러시아 본토를 불가침 성역으로 만들어 종전 모멘텀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바이든 정부의 전향적 선택을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다가오는 9월 유엔 총회를 계기로 자신의 4단계 승전계획을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트럼프 후보에게 제시할 거라면서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해제가 전쟁의 조기 종식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토의 일부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으나 미국을 비롯하여 나토의 주요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의 요구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2022년 6월 마드리드 정상회담, 2023년 빌뉴스 정상회담, 그리고 2024년 워싱턴 정상회담을 연속해서 개최하여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왔다.

빌뉴스 정상회담을 통해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회원국 가입을 재확인했고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과 동등한 자격으로 나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나토-우크라이나 이사회를 새롭게 설립했다. 2024년 워싱턴 정상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장비 제공 및 훈련을 제공하는 나토 안보지원과 훈련(NASTU) 설립을 결정하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는 군대를 건설할 수 있도록 군사 장비, 지원 훈련을 제공하기 위한 장기 안보 지원을 약속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다양한 군사 장비 등을 지원하여 우크라이나의 승전을 기대하는 강한 바람과는 달리 나토는 러-우 전쟁에 동맹이 직접 참여하는 것을 상당히 꺼리고 있다. 나토의 직접적 관여는 러-우 전쟁의 확전을 의미하며 이는 러-우 전쟁이 작게는 유럽의 전쟁으로 크게는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개연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나토의 핵심 국가인 미국과 독일이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도 특정 무기의 사용과 용도에 제한을 두는 것도 이로 인해 나토가 전쟁에 직접 개입하게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미국과 대다수 나토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의 입장을 수용한다면 러-우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며 이는 전쟁의 조기 종식보다는 전선의 확대와 관련국들의 연쇄적 연루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부담감, 그리고 확전에 따른 두려움을 갖고 있다. 따라서 미국을 비롯하여 나토의 주요 동맹국들은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가져올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문제를 놓고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딜레마에 처하게 되었다.

전선 확대를 통해 승전계획을 구상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략적 승부수가 어떻게 결론 날지는 알 수 없으나 미국 등 서방 세계는 러-우 전쟁을 마냥 장기전으로 흘러가도록 방치해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다가오는 9월 유엔 총회를 계기로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시할 승전계획의 내용과 11월 초반에 나올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러-우 전쟁의 국면전환 여부의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

깨어진 평화는 복구 불가능, 사전 경계가 중요하다

유럽에서 목격되고 있는 러-우 전쟁의 양상은 한반도 평화·안보에 적지 않은 교훈과 함의를 던져주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게 된 이유나 원인은 차치하더라도 우크라이나는 자신의 군사력을 제대로 보유하지 못해 전쟁 수행을 위해 나토 동맹국의 지원 등 주어진 안보력에 의존하고 있다.

주어진 안보력으로는 독자적인 작전 계획이나 전략, 전쟁 수행을 위한 보급 체계, 그리고 공격 목표물 선정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는 종전 상황이나 평화 회복을 기약할 수도 없어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크라이나 국민이 현재를 참고 미래를 기대해볼 수 있는 미래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러-우 전쟁은 무엇보다도 주어진 안보력의 한계와 자신이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자주국방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한반도 평화·안보를 굳건히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강의 안보력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자강의 안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안보를 지켜나가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러-우 전쟁이 한반도 평화에 던져주는 또 다른 함의는 깨어진 평화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비록 우크라이나가 종전에 따른 평화 회담을 기대하고 있지만, 상황은 이를 보장할 수 없다. 설사 종전이 이루어지고 평화 프로세스가 가동되더라도 우크라이나의 평화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평화가 원상태로 복구된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 평화가 깨지는 어떠한 상황도 경계해야 한다. 자강의 안보력과 평화를 튼튼히 하기 위한 실용적 외교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또한 중요하다. 한번 깨어진 평화를 다시 원상태로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단순한 이치를 명심해야 한다.

[평화재단 (staff@peacefoundat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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