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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뜨거운 바다가 다 삶아버려… 추석에 팔 물고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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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온 타격 통영·완도·고성 르포

조선일보

지난 27일 경남 통영시 산양읍의 한 부두. 해수온이 상승해 죽은 물고기가 플라스틱 통마다 가득 담겨 있다. 인근 양식장에서 뜰채로 걷어온 것들이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통영=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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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키운 쥐치 20만 마리를 이틀 만에 잃었어요. 이건 재앙입니다.”

지난 27일 경남 통영시 산양읍의 한 부두. 죽은 물고기를 가득 담은 플라스틱 통 100여 개가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근처 양식장에서 폐사한 물고기를 뜰채로 걷어 온 것이다. 양식장 어민 김평만(63)씨는 “28도 따뜻한 물에도 버티는 쥐치를 구해다 키웠는데 올해는 쥐치마저 속절없이 죽었다”며 “손해가 3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통영 일대 바닷물의 온도는 이달 들어 29.8도까지 상승했다. 역대 최고치다.

연이은 불볕더위에 한반도 앞바다가 끓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앞바다의 연평균 수온은 19.8도로 1990년 관측을 시작한 이후 가장 높았는데 올해는 이 기록마저 깰 기세다. 현재 대부분 앞바다의 수온이 평년보다 2~3도씩 높다. 연평균 수온이 20도 이상이면 아열대 지역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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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다음 달 추석 대목을 앞두고 우럭(조피볼락), 멍게, 쥐치 등을 키우는 어민들 속도 타들어 가고 있다. 물고기마다 서식 가능한 수온이 있는데 이를 넘으면 숨을 못 쉬거나 먹이를 먹지 못하고 죽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가두리 양식장의 47%가 있는 경남에서는 지난 29일까지 우럭, 숭어, 참돔 등 1843만5000마리가 폐사했다. 피해액은 301억원을 넘었다. 역대 가장 피해가 컸던 지난해보다 더 심각하다. 지난해 경남에서는 해수 온도가 상승해 양식장 물고기 1466만 마리가 죽었다. 피해액은 약 207억원이었다.

경남 통영에서 우럭을 양식하는 박모(58)씨는 “물고기가 헤엄치던 바다가 이제는 물고기를 푹푹 삶고 있다”며 “손쓸 새 없이 죽어나가 곧 추석인데도 내다 팔 고기 자체가 없다”고 했다.

멍게 양식장에서 만난 어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경남 통영 영운리 바다에서 멍게 양식을 하는 김대환(43)씨가 물속에 있던 5m 줄을 끌어올리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멍게는 줄에 매달아 키우는데 싱싱한 붉은색 멍게 대신 희뿌연 멍게 껍질만 붙어 있었다. 멍게가 자라는 데 적당한 수온은 10~24도다. 수온이 24도를 넘으면 먹이를 먹지 못하고 26도 이상이면 내장은 물론 껍질까지 녹아 폐사한다. 지금까지는 수온이 상승하면 멍게 줄을 더 깊은 바다로 내려 수온을 적당하게 맞췄는데 올해는 이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깊은 바닷물 온도도 28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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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 양식장 피해 점검 - 최용석(오른쪽)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장이 30일 경남 통영시 멍게 양식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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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과 거제는 전국 멍게 생산의 70%를 차지하는 멍게 주산지다. 통영 멍게수하식수협 관계자는 “올해는 통영·거제의 멍게 양식장 95%가 사실상 궤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피해 여파는 올해로 끝이 아니다. 보통 멍게는 2년 정도 키워 출하하는데, 내년에 내다 팔 멍게뿐 아니라 후년에 팔 새끼 멍게도 다 죽었기 때문이다. 김대환씨는 “최소 2년간 통영·거제산 멍게를 밥상에서 보기 어렵게 된 셈”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전복의 80%를 길러내는 전남 완도 어민들은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 전복은 28도까지 버틸 수 있는데 바닷물 온도가 엇비슷하게 올랐기 때문이다. 완도 어민들은 수온 상승에 대비해 지난달 말부터 전복을 굶기고 있다. 수온이 상승하면 먹이로 준 다시마가 쉽게 썩어 물속 산소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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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를 가득 메운 죽은 물고기 - 지난 27일 경남 통영시 산양읍의 한 부두. 바닷물 온도가 상승해 죽은 물고기가 플라스틱 통마다 가득 담겨 있다. 인근 양식장에서 뜰채로 걷어온 것들이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통영=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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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어민들은 해파리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다. 해수 온도가 상승해 노무라입깃해파리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어민 김종만(61·강원 고성)씨는 해파리 때문에 한 달째 조업을 포기한 상태라고 했다. 김씨는 “이맘때면 가자미와 곰치, 우럭을 잡기 위해 쉴 새 없이 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올해는 그물에 해파리만 잔뜩 올라와 죽을 맛”이라며 “노무라입깃해파리는 무게가 많게는 100㎏이나 나가 그물을 찢어 먹는 주범”이라고 했다. 노무라입깃해파리는 해파리 중에서도 특히 독성이 강해 촉수에 쏘이면 피부가 부풀어 오르며 불에 덴 것 같은 통증을 유발한다. 심한 경우 쇼크로 사망할 수도 있다.

해수 온도 상승의 영향은 이미 서울 시민들의 식탁에까지 미치고 있다. 서울 중구의 일식당 사장 A씨는 “양식장 횟감을 구할 수가 없어 더 먼바다에서 자연산을 구해다 쓰고 있다”며 “자연산도 최근 가격이 3~4배 뛰었다”고 했다. 한식당 사장 B씨는 “멍게가 없어 멍게 비빔밥을 못 팔고 있다”고 했다.

대형 마트들은 냉동 저장해 놓은 물량으로 버티고 있다. 대형 마트 관계자는 “특히 멍게는 냉동 물량마저 부족한 상황”이라며 “지금도 멍게 값이 작년보다 40~50% 비싼데 가격을 더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완도=조홍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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