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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단독] ”국정원, ‘3대 간첩단’ 연계 100명 포착하고도 수사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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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지휘한 前간부

“대공수사권 폐지되며 내사 중단”

조선일보

국정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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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2022년 11월부터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등 ‘3대 간첩단’ 사건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북한 연계 혐의자 100여 명을 포착하고도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내사 대상자로만 분류돼 있는 것으로 13일 전해졌다. 이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와 경찰 이관의 영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를 담은 개정 국정원법은 2020년 12월 13일 통과됐고, 올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3대 간첩단 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내사는 창원은 2016년, 제주·민노총 사건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2020년 국정원 대공수사국 수사단장으로 내사를 지휘했던 전직 국정원 간부 하동환씨는 본지에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다 합쳐 북한과 연계된 혐의자가 약 100명에 달했다”며 “3개 간첩단과 잦은 통화를 하거나 접촉하는 등 북한에 포섭 대상으로 보고된 인물들인데 대공 수사권 폐지로 이들에 대한 내사는 진행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공 수사 전문가인 하씨는 2022년 3월 국정원 대구지부장을 끝으로 퇴임했다.

하씨에 따르면, 당시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사건으로 국정원 수사국 내사부에 등재된 인원은 각각 15명, 40명, 45명 정도라고 한다. 내사 대상자 약 100명 가운데 국정원이 간첩단의 정식 조직원으로 의심한 인물은 40여 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검찰이 기소했던 인원은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에서 각각 4명, 4명, 3명으로 총 11명이었다. 하씨는 “올해부터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니 추가 내사 대상자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못한 채 일부에 대해서만 2022년 11월 압수 수색하고 공개 수사로 전환한 것”이라고 했다.

하씨는 “세 간첩단 모두 국내에서 5년 이상 암약했다”며 “최소 2~3년의 내사 기간만 줬더라면 국정원은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 각 간첩단 조직 실체를 규명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정원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들에 대한 간첩 활동 여부를 규명해야 했지만 당시 명백한 증거가 확보된 자들만 피의자로 특정해 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며 “국정원 수사권 폐지에 따른 수사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넘겨받으면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 산하에는 안보수사단이 설치됐다. 하지만 국정원이 세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내사 대상자로 분류한 인사들의 명단은 경찰에 제공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 전문가들은 “국정원으로서는 지금 경찰의 대공 수사력으로는 간첩단 수사를 감당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보안 유지도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현재 재판을 받는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사건의 피고인들은 베트남, 캄보디아 등 대부분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했다. 또 ‘사이버 드보크’(이메일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해 교신)나 ‘스테가노그라피’(기밀 정보를 이미지 파일이나 MP3 파일 등에 암호화해 숨기는 기술) 등 고도화된 암호 프로그램을 통신 수단으로 활용해 교신했다. 이 때문에 내사와 증거 수집에는 현지어에 능통하거나 IT 전문성이 높은 수사관들이 투입됐다.

전문가들은 “간첩 수사를 제대로 하려면 국내 내사와 수사, 해외 내사, 과학 수사, 북한 정보 등이 종합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며 “시일이 걸리더라도 경찰이 국정원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의 영향을 경험했던 하동환씨는 “국정원에 63년간 축적된 간첩 수사 역량을 경찰이 단기간에 전수받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복원이 어렵다면 미국의 FBI처럼 별도의 간첩 수사 전담 기관을 창설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했다.

[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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