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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에어매트 5층까지 ‘안전’… 50층 이상은 ‘피난구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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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시 대피 어떻게 하나

지난 22일 발생한 경기 부천 호텔 화재를 계기로 고층 건물에 사는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7층에서 불이 나도 저렇게 많이 숨지는데 고층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에어매트도 소용 없고 막막하다’ 등 글이 올라왔다.

당시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았지만 7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소방이 10층까지 쓸 수 있는 에어매트를 설치했지만 7층 투숙객이 한쪽 모서리 근처로 떨어져 숨졌다. 매트가 딱지처럼 뒤집어지면서 곧이어 뛰어내린 투숙객은 맨바닥에 떨어져 사망했다. 2명은 8층에서 7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근처에서 유독가스에 질식사했다.

◇아래층에서 불나면 옥상으로, 위층에서 불나면 1층으로

소방 당국은 비상벨이 울린다고 무작정 집을 나와 대피하기보다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119에 전화해 건물 몇 층에서 불이 났는지, 연기나 화염이 어느 정도 확산됐는지 등을 먼저 파악한 뒤 안내에 따라 이동하는 게 안전하다는 것이다. 소방 관계자는 “고층 건물 화재 때 많은 사람들이 급하게 대피하다가 유독가스를 마셔 질식사한다”며 “연기는 위로 확산되기 때문에 자기 집보다 아래층에서 불이 나면 더 위층인 옥상으로, 위층에서 불이 나면 1층으로 대피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0~2022년) 아파트 화재 사상자의 40.4%가 대피 도중 발생했다. 작년 3월에는 경기 수원의 아파트 1층에서 불이 났는데 10층 주민이 계단으로 대피하다 질식사했다. 고층 건물은 연기나 화염이 계단을 타고 위쪽으로 급격하게 퍼지는 ‘굴뚝효과’ ‘연돌효과’가 발생한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방화문을 닫지 않을 경우 연기가 1초당 1개 층씩 올라갈 정도”라고 했다.

이 때문에 연기가 가득차 대피가 어려운 경우에는 집 안 대피 공간이나 화장실로 들어가 젖은 수건으로 문틈을 막고 119에 구조 요청하는 게 더 안전하다. 2005년 이후 지은 아파트에는 발코니 쪽에 별도 대피 공간이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화장실에 들어가 젖은 수건으로 문틈을 막고 샤워기로 물을 뿌리는 것도 방법”이라며 “수막이 연기를 막아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부천 호텔 화재 때도 20대 여대생이 같은 방법으로 버틴 끝에 구조됐다. 대피할 때는 젖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 뒤 낮은 자세로 벽을 짚으며 이동하면 된다.

◇에어매트는 5층까지 안전

에어매트는 5층용, 10층용, 15층용, 20층용 등이 있지만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은 5층용까지만 안전 인증을 내준다. 5층까지만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방 전문가들도 “그보다 높은 층은 최후의 수단으로 써야 한다”고 했다.

다만 생존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20년 대구의 초고층 아파트 51층에서 투신한 여중생이 갈비뼈 2개가 부러지는 부상만 입은 사례도 있다. 이 여중생은 에어매트 한가운데 떨어져 목숨을 건졌다. 같은 해 경기 구리에서는 8층에서 뛰어 내린 10대가 가벼운 부상만 입기도 했다.

생존율을 높이려면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엉덩이부터 떨어져야 한다. 여러 명이 뛰어내릴 때는 소방대원의 통제에 따라 한 명씩 간격을 두고 뛰어내려야 한다. 에어매트에 다시 공기를 주입하는 데 20초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함승희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5층 이상에서 내려다보면 에어매트가 손바닥 정도로 작게 보인다”며 “한가운데를 향해 뛴다고 생각하고 뛰어야 한다”고 했다.

줄을 타고 내려올 수 있는 완강기는 건물 10층까지 설치하게 돼 있다. 10층 안팎에 사는 주민은 고려해 볼 수 있다.

사다리차는 일반적으로 최대 30층 정도까지 구조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사다리를 펼치려면 건물과 사다리차 사이에 일정한 간격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에 긴급한 상황에서 쓸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번 부천 호텔 화재 당시 사다리차가 출동했지만 호텔 앞에 주차한 차량 때문에 무용지물이 됐다. 게다가 주상복합 등은 창문이 없거나 작은 경우가 많아 사다리차로 구조하기 어렵다.

◇초고층 살면 피난구역으로

5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은 2012년부터 30층마다 피난구역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피난구역은 방화 처리를 해 불이 나도 일정 시간 버틸 수 있는 공간이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서울 잠실 롯데타워(123층)는 22층, 40층, 60층, 83층, 102층에 각각 피난구역이 있다. 롯데 측은 “최대 3시간까지 버틸 수 있게 설계했다”며 “내부에는 마실 물과 화장실, 방독면, 소화기 등이 있다”고 했다. 피난구역에는 1층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피난용 직통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이 엘리베이터는 불이 나도 운행할 수 있도록 별도 전원을 갖추고 있다. 소방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불이 나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계단으로 대피하라고 하지만 피난 엘리베이터는 예외”라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2020년 10월 울산 남구의 삼환아르누보 주상복합 아파트(33층)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지만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15층과 28층에 피난구역을 만들어 주민들이 대피한 덕분이었다.

안전 전문가들은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평상시 실전 훈련이라고 했다. 피난구역이나 완강기 등 시설이 있더라도 위치나 이용 방법을 모르면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부천 호텔 화재 때도 호텔에 완강기가 있었지만 완강기로 탈출한 투숙객은 없었다. 이용재 교수는 “불이 나면 연기가 자욱해 피난구역이나 완강기 위치를 알고 있어도 찾기 어렵다”며 “평소 훈련을 통해 몸으로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부천=이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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