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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그 영화 어때] 황정민이 싸우는 악당은 황정민이다, 영화 '베테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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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87번째 레터13일 개봉하는 영화 ‘베테랑2′입니다. 추석 극장가를 점령할 만반의 태세를 갖춘 작품이죠. 강추합니다. ‘베테랑1′를 안 보셨거나,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보시는 데 지장없습니다. 저도 관객 눈높이에서 보려고 ‘베테랑1′을 복습하지 않고 시사회에 갔다가 이 레터 쓰기 전에야 1편을 다시 봤는데요, ‘베테랑1′을 기억하시면 소소하게 챙길 포인트가 있긴 있더군요. 그 부분은 아래에 말씀드릴게요. 1편에서 유아인이 워낙 강력한 악당을 연기해서 2편에선 누가 악역일지 궁금하실텐데요, 우선 아셔야 할 거. ‘베테랑2′는 ‘유주얼 서스펙트’가 아닙니다. 두뇌 싸움, 반전은 류승완 감독의 방식이 아니에요. 영화 시작하고 5분쯤 있다 그게 누군지 대놓고 알려줍니다. 수수께끼나 퍼즐 풀기가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라는 선언이죠. 악당이 누구냐보다 악당의 존재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느냐에 무게가 실립니다. 저도 아래에 악당이 누군지 말씀드리고, 그 악당 캐릭터의 약점이라고 지적이 나오는 부분이 왜 약점이 아니라고 보는지에 대한 제 해석을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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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2′는 ‘베테랑1′과 확연하게 다릅니다. 그래서 새롭고, 그 새로움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베테랑1′은 선과 악의 대결이었죠. 명확하고 깔끔했고요. ‘베테랑2′는 구분선이 흐릿해집니다. 정의 대 정의의 대결이라고나할까요. 각자가 정의라고 믿는 신념이 충돌하는 거죠. 세상이 칼로 물 베듯 구분이 되던가요. 혼란과 혼선, 혼돈의 연속이죠. 그에 대한 류승완의 영화적 응수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일망타진의 현장으로 안내됩니다. 봉고차에서 내리는 중장년 여성들, 다들 잔뜩 부풀린 머리에 털코트 차림이네요. 5만원짜리 뭉터기 돈다발도 보이고요. 익숙한 얼굴이 있으니 장윤주(미스 봉) 형사입니다. 카메라가 그의 코트에 달린 어쩐지 저렴해보이는 브로치를 보여주네요. 네, 카메라입니다. 누굴 잡으러 온 걸까요. 혹시 1편에서 황정민(서도철)한테 주부도박단 잡아오라는 지령이 내려졌던 거 기억나시나요. 9년 만의 속편에서 황정민이 기어이 주부도박단을 잡으러 온 거랍니다. 잠복한 황정민은 저만치 떨어진 차 안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브로치 카메라가 촬영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데, 이런이런,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또 있네요. 이 도박판의 실세쯤으로 보이는 털코트 아저씨입니다. 아저씨의 매의 눈에 미스봉 형사의 정체가 들통나고 도박판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몰려든 경찰, 뛰쳐나가는 도박꾼들. 우리의 서도철 형사는 천신만고 끝에 일당의 수갑을 채우는데 성공합니다. “형님, 밥 먹으러 갑시다~” 이 대사와 함께 ‘베테랑2′ 로고.

도입부의 도박단 검거는 경쾌하고 힘이 넘쳐요. 여기까지 보면 1편과 비슷하죠. 그런데 바로 분위기가 변합니다. 재갈 물린 채 결박된 남자 등장. 이 남자는 대학 교수인데, 제자를 성적으로 착취한 아주 나쁜 인간입니다. 꽃뱀으로 몰린 제자는 투신 자살하는데, 교수는 무혐의로 풀려나고 그 와중에 승진 파티를 열었고요. 그런데 누가 이 나쁜 놈을 잡아다 묶어 놨을까요. 나쁜 놈에게 다가가는 야구 모자를 카메라가 비춥니다. 혹시, 정해인? 카메라는 혹시라도 관객이 확신하지 못할까봐 더 확실하게, 더 크게 정해인의 얼굴을 확대해 보여줍니다(감사합니다, 감독님). 그리고 나쁜 교수는 제자가 사망했을 때와 같은 모습의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시민들은 흥분합니다. “정의가 구현됐다!”

네, 정해인(박선우)이 악당입니다. 황정민의 대척점에 선 인물이라는 점에서요. 앞서의 나쁜 교수처럼 법이 처벌하지 못하는 각종 나쁜 놈들을 찾아내 단죄합니다. 염산 테러 가해자는 똑같이 염산 테러 해서 죽이는 식이죠. 사람들은 그를 해치라고 부르며 떠받듭니다. 사이다 복수에 열광하며 “나라에서 해치한테 상을 줘야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편승하는 유튜버가 있는데 ‘정의부장TV’라는 사이버 렉카 채널 운영자입니다. 전 시사회에선 이 사람을 몰라봤는데, 알고보니 1편에 나온 신문기자였더군요. 그새 뇌물 받고 신문사에서 해고돼 가짜뉴스 전파하는 유튜버로 나섰네요. 1편에서 유아인 사무실에서 정웅인을 폭행한 현장소장(정만식) 기억하세요? 2편에서도 악행을 저질러서 해치의 타겟이 됩니다. 황정민과 지구대 경찰 정해인이 정만식을 해치로부터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게 되고 함께 해치를 추격합니다.

아, 그런데 정해인이 해치인데, 어떻게 정해인이 해치를 찾아나서는 걸까요. 가짜 해치가 나서거든요. 이 가짜 해치를 뒤쫓는 남산 계단의 추격 액션이 숨막히게 격렬합니다. 전 보다가 ‘존 윅 4′의 몽마르트 계단 총격전이 생각났는데요, ‘베테랑2′가 훨씬 긴박해요. 류승완이니까 찍을 수 있는 액션이다, 이런 생각이 절로.

류승완이니까, 류승완이라서, 류승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은 뒤에 한 번 더 나오는데요, 감탄이 나왔던 우중(雨中) 5대1 격투 장면입니다. 6명의 피사체가 빗물에 미끄러지면서 엉켜드는 모습은 싸움이 아니라 에너지 레벨을 허용치 이상 높인 현대무용 같아보였어요. 타격감 극대화 지점을 찾아 서로 주먹을 날리며 파고드는 슬라이딩 동작은 여느 무용 안무만큼이나 동선이 유려해서 홀린 듯 봤네요. 이대로 우중 격투신만 하염없이 보고 싶다는 욕심까지 들 정도였어요. 우중 격투 하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생각나시죠. 그런데 그 영화는 안성기 박중훈 2명이 싸우는 거라 이런 안무가 나올 수 없어서요.

영화는 해치가 정해인이라는 사실을 눈치 챈 황정민이 마지막 일전을 벌이는 종반부로 향해갑니다. 중간중간 “아, 힘들다”고 할 때마다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가 생각나더군요. 한국판 존 매클레인이라고나 할까요.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아무도 안 시킨 일에 자청해 뛰어들어 고생을 자초하는. 존 매클레인이 영화 편수를 더할 때마다 가족사가 구체적이 되면서 이혼도 하고, 딸 아들과 화해도 하고, 관객은 그와 함께 나이를 먹고. 황정민의 서도철도 그렇게 우리와 오래 함께 할 캐릭터가 아닐까 싶네요.

그런 면에서 ‘베테랑’은 서도철의 영화입니다. 일부에서 ‘범죄도시’의 마석도 형사와 비교하는데, 전혀, 완전히, 아주, 현격히, 다른 캐릭터라고 이 연사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범죄도시’는 마석도가 주먹만 붕붕 휘두르고 있으면 회전문 드나들 듯 악당 3, 악당4가 교체되는 콘트롤C+ 콘트롤V 영화입니다. ‘범죄도시2′까지는 좋았죠. 그런데 3편부터는 발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식상한 복제품입니다. 선과 악이 칼로 무 자르듯 나뉘는 ‘범죄도시’와 진실이 두 개 일수도 있다고 말하는 ‘베테랑2’는 지향점이 완전히 다른 영화이기도 합니다. 전 ‘범죄도시4 ‘같은 안일한 복제품은 장기적으로 창작진에게도 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천만영화라고 해도 그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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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캐릭터가 왜 연쇄살인까지 해가며 사적 제재에 나서는지 그 이유가 영화에서 안 드러나요. 그렇다보니 캐릭터 서사가 없다고 지적이 나오는데, 전 동기나 서사가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테랑2′의 악당은 정해인이면서 동시에 정해인이 아니기도 한 게 아닐까 하는. 제가 레터 제목에 ‘황정민이 싸우는 악당은 황정민’이라고 썼는데, 정해인은 황정민이 맹목적인 정의에 매달렸다면 자칫 빠질 수도 있었던 왜곡된 확증 편향의 거울이 아닐까 싶었거든요. 황정민의 그림자, 거울 속 어두운 자아의 일면으로 볼 수 있고요. 황정민이 싸우고 있는 건 악당, 빌런이 아니라 자기 자신, 나아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일면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해인의 서사가 없다는 점은 비판의 지점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귀결이 되죠. 황정민의 다른 얼굴이기에 따로 서사가 생겨서 개별적인 캐릭터가 되면 오히려 전체적인 구도가 어긋나게 되니까요. 영화에서 황정민이 처음 정해인을 보고 “넌 나와 같은 과야”라고 말하는데요, 지나가듯 말하는 그 대사가 의미있게 들렸어요. 정해인도 황정민을 보고 말하죠. “우리는 멋진 팀이 될 거 같다”고요. 해치식 정의 구현에 대한 유혹, 아무런 성찰이 없는 단죄의 유혹은 우리 모두를 눈멀게 할 수 있는 자아의 그림자라는 게 이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가 아닐까 싶어요.

제가 정말 맘에 든 장면이 있습니다. 다른 기사에서 전혀 언급이 안 되던데, 저는 참 좋았던, 라면 젓가락 장면입니다. 에필로그에서 황정민이 라면을 끓여먹다가 아들에게 너도 먹어보라고 권하는데요, 다들 이 장면에서 황정민이 아들에게 사과한 것만 언급하던데 저는 젓가락이 더 잘 보였거든요. 아들에게 라면을 먹으라고 권하는데 아들이 아빠 젓가락을 받아들고 면을 건져 먹더니 짜다고 합니다. 좀 있다가 아내가 또 그 젓가락으로 먹더니 역시 같은 반응.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그 모습. 맞아, 식구라는 게 이런 거지. 같은 젓가락을 무심히 쓰는 사이. 순간 서도철이 허구의 캐릭터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네요. 그걸 거창한 설정 없이 젓가락 두 짝으로 이렇게 와닿게 하다니.

류승완 감독이 기자간담회 때 하던 걸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무척 반갑고 감사했답니다. 누군가는 그런 생각으로 꾸준히 도전하니까 우리 영화가 발전할 수 있는 거겠죠. 황정민 연기에 대해 말씀드리는 건 밥 먹으면 배부른 이유를 설명하는 것과 같으니 믿고 보시면 되고요. 정해인은 응달과 햇살이 동시에 드리울 수 있는 드문 얼굴을 가졌더군요. 감정의 엄폐물이 전혀 없어요. D.P.2에서 엔딩 크레딧 올라가고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정해인 얼굴 기억나시나요. 찾아온 그 인물(혹시 스포일까봐)을 바라보던 그 표정. 그 장면을 보고 알았어요. 예쁜 남친은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많고 많은 얼굴 중 하나일 뿐이구나 하고요. ‘베테랑2′에서 눈을 내리까는듯 하면서 옆눈길로 상대를 싸늘하게 관찰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럴 땐 영락없는 싸이코패스에요. 극장에서 확인해보시길. 전 다음 레터에서 인사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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