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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태평로] 아이들이 보내는 SOS, 응답하라 어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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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불안, 우울, 자해는

스마트폰과 SNS 중독 탓이다

현실에선 그들을 과보호하고

가상 세계에선 방치할 것인가

조선일보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교수가 쓴 '불안 세대(The Anxious Generation)' 영문판 표지. 한 청소년이 스마트폰을 보며 '좋아요' 같은 이미지들에 포위돼 있다.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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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오장육부가 아니라 오장칠부가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옆에 들러붙어 있는 스마트폰이 신체 일부가 됐다는 풍자다. 딩동! 주말마다 도착하는 ‘주간 리포트’는 그 IT 기기에 주인이 얼마나 종속돼 있는지 알려준다. 내 스크린 타임(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하루 평균 4시간 46분. 깨어 있는 시간의 30%를 점령당한 셈이다.

세계적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신간 ‘불안 세대’에서 2010~2015년에 Z세대의 정신 건강이 심각하게 무너졌다고 폭로한다. 1996년 이후 출생한 그들은 청소년기를 거치며 스마트폰 출시, ‘좋아요’ ‘리트윗’ ‘공유’ 같은 소셜미디어(SNS) 시작, 인스타그램 확산을 목격했다. 흥미롭고 중독성 강한 ‘포털’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사춘기를 보낸 최초 세대다.

불안, 우울증, 자해 등 미국 10대의 정신 건강 지표는 2012년에 “누가 갑자기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두 배 이상 치솟았다.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연결되고 앱을 통해 SNS 플랫폼의 본거지가 될 수 있다. 테크 회사들은 자동 재생 기능과 알고리즘으로 사용자를 더 오래 붙잡아둔다. 수시로 딩동거리며 주의를 빼앗는 것이다. 그 가상 세계가 해일처럼 Z세대를 삼켰다. 부유한 나라에서 10대의 정신 건강은 같은 패턴으로 나빠졌다.

이 재앙에는 어른들의 직무 유기도 있었다. 현실 세계의 과잉 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 바깥은 상상만큼 위험하지 않은데 부모들은 아이들끼리 노는 것을 불안해했다. 반대로 인터넷엔 폭력물과 음란물이 많지만 아이가 집에서 그 가상 세계에 접속해 있으면 안전하다고 착각했다. Z세대는 어릴 적 바깥에서 몸을 움직이는 재미, 아이들끼리 눈빛을 읽고 사회생활을 하는 기술, 싸우고 사과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한 것이다.

‘불안 세대’에게 일상의 중심은 스마트폰과 SNS다. 남자아이들은 속도가 빠른 게임을 즐기며 산만해진다. 여자아이들은 SNS 속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한다. 인기와 조회 수, 가짜 이미지에 집착하며 그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은 우울증 1위이고 10~20대의 정신 건강 지표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 명백한 조난 신호(SOS)다.

우리나라 청소년은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다. 스마트폰과 SNS가 등장하기 전부터 학원에 다니느라 어린 시절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방면에서 한국은 최악입니다. 부모의 궁극적 역할은 자기가 필요 없어지게 하는 거예요. 아이들은 스스로를 챙기며 독립적이고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야 합니다.”(하이트)

해법은 무엇일까. 미국의 경우 상원과 13주에서 청소년을 SNS로부터 보호하는 강력한 법안이 통과됐다. 프랑스, 영국, 호주, 대만에서도 스마트폰 규제안을 논의하고 있다. ‘스마트폰 소유는 14세부터, SNS 가입은 16세부터’를 제안한 하이트는 “한 도시의 학교와 학부모 전체가 ‘스마트폰·SNS 금지’라는 집단행동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규제가 능사가 아니라면 테크 회사들을 압박하며 개선책을 모색해야 한다.

‘불안 세대’를 걱정하는 초등학교 교사가 이런 글을 남겼다. “요즘 아이들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등교합니다. 눈 마주치고 손 흔들어줄 친구를 찾지 않아요. 방과 후 수업을 기다릴 때도 핸드폰을 보며 각자 시간을 보냅니다. 스마트폰의 장점을 꼽으며 조절할 수 있게 키우면 된다는 분도 있지만, 평범한 아이들과 부모들은 그걸 해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에요.” 아이들이 망가지며 SOS를 보내고 있다. 응답하라 어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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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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