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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정지우의 밀레니얼 시각] 돈 말고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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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돈이 최고라는 시대가 지금인데 그래서 사람들 행복하니? 돈만 앞세우는 게 왜 문제냐 하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우릴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믿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야."

김호연의 최근작 '나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대사다. 이 소설은 모두가 '돈'만을 좇는 시대에, 어떻게 자기만의 가치를 좇을 것일지 묻는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돈'보다 중요한 게 없다는 합의를 끝낸 것 같다. 직업 선택의 기준은 오직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가 되었다. 결혼할 때도 다른 모든 조건은 돈보다 덜 중요하다. 인생의 대부분을 더 비싼 동네, 더 비싼 명품, 더 비싼 경험을 얻기 위해 희생하는 건 너무 당연한 진리가 되었다.

그에 발맞추어 '돈'과 관련된 콘텐츠가 큰 호응을 얻게 되기도 했다. 수많은 유튜버나 자기계발서, 각종 재테크 강의 등은 자기 말만 들으면 손쉽게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하기도 한다. 마치 이 강의나 책을 보지 않으면,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불안도 자극한다. 온 세상이 돈에 대한 관심과 이야기로 뒤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돈은 중요하다. 돈은 어찌 보면 이 각자도생 사회에서 나와 가족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고, 여러 좋은 경험을 수월하게 해주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모든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돈으로 모든 것을 환원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또 다른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순수한 관계 없이 모든 관계가 이해득실을 따지게 되고, 모든 삶의 시간을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계산하며, 돈의 많고 적음으로 서로 비교할 때 우리의 삶도 관계도 시간도 그 진정한 가치는 점점 사라지게 된다.

삶이란 자기만의 가치를 믿으며 나아가지 않으면 버티지 못한다. 돈처럼 계량하기 좋은 가치로 서로 비교하고 자기의 존재 가치를 따지다 보면, 온갖 시기, 질투와 자기혐오의 늪에 빠질 날이 온다. '돈'은 중요하지만, 삶에서 더 중요한 건 돈보다 더 넓은 자리에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나'의 가치관으로 꽉 찬, 나의 관계와 우정,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기존에 돈만 강조하는 콘텐츠는 개개인의 세계, 개개인이 만들어야 하는 자기만의 세계를 추풍낙엽처럼 날려버린다. 그 대신 돈으로 모든 걸 치환한다. 돈을 적당히 추구하면서도 돈이 아닌 가치까지 챙기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자본주의이자 각자도생의 시대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모두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돈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그 밖의 가치가 얼마나 '자기만의 가치'로서 절대적으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점점 덜 이야기한다. 그런 문제의식을 담아 나는 최근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나는 돈만 좇는 삶의 취약성에 대해 썼다. 돈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자존감이 추락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역시 돈만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사람은 생각만큼 돈을 벌지 못하거나 투자 실패 등으로 돈을 잃게 되면 삶 전체를 잃는다. 그러나 돈 이외에도 자기만의 취향을 계발하고, 이해관계를 벗어난 순수한 관계를 맺으며,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들로 시간을 쌓아간 사람은 다르게 말할 수 있다. "나에게는 돈만 좇은 그들의 삶과 결코 바꾸고 싶지 않은 그 무언가가 있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얻은 진실한 시간들이 있고, 그것은 그 무엇 앞에서도 강하고 공고하다. 나는 내 마음이 담긴 나의 시간들로 강해진다"고 말이다.

우리 사회는 '돈'으로 획일화되고 서열 지어진 가치 기준이 아닌 다른 가치 기준도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좋은 삶은 단순히 돈만 많은 삶이 아니라 여러 좋은 관계, 값진 취향, 의미 있는 기여와 고민들로 꽉 찬 '나만의 삶'이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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