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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中 ‘전랑 외교’ 버렸나… 한국과 대화 줄줄이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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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 외교에 反中감정 고조 판단

조선일보

조태열(왼쪽)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달 26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양자회담을 하며 악수하는 모습. 최근 중국은 한국과의 대화채널을 속속 복원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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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관계 경색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한중 대화와 교류가 줄줄이 복원되고 있다. 한중 관계에 ‘훈풍’이 부는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글로벌 ‘전술’ 수정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 당국이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로 대표되는 노골적 강압 전술이 각국의 반중 감정만 고조시켰다고 판단하고 국제사회 여론 관리에 들어가면서 그 일환으로 한국과의 대화도 복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시진핑 주석의 목표와 근본적 전략이 변경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0일 중국 산둥성 지난시를 방문해 경제통상협력 교류회를 개최했다. 산자부와 산둥성 인민정부 간의 대면회의가 복원된 것은 2019년 이후 5년 만이다. 그 전날인 19일 외교부에서는 한중 청년 교류 일환으로 중국 베이징과 칭하이를 방문할 청년 50명으로 구성된 한국 대표단 발대식이 있었다. 2019년 이후 중단됐던 한중 청년 교류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한·일·중 3국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리창 중국 총리와의 양자회담에서 인적 교류를 확대하기로 합의하면서 5년 만에 복원됐다.

5월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중국의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2019년 12월 중국 청두 회의 이후 중단된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차기 개최국인 한국의 재개 요청에 중국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4년 이상 복원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 들어 중국이 전향적 태도를 취해 4년 5개월 만에 정상회의가 재개될 수 있었다. 3국 정상회의 직전에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 초청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양자회담을 가졌다. 한국 외교부 장관이 베이징을 방문한 것도 6년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중앙정부 차원의 대화가 복원되자 지방자치단체 간의 교류도 늘었다. 4월 랴오닝성 당서기, 6월 장쑤성 당서기 등의 방한에 이어 이달 초에는 간쑤성 부서기가 한국을 찾았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달 말 베이징을 방문해 인융 베이징시 시장과 회담했다.

외교가에서는 이런 변화의 배경에 지난해부터 뚜렷해진 중국 대외 전술의 변경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경제 불안정과 높은 청년 실업률 등 시 주석이 대내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내우외환’의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관리 모드로 전환해야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도 “지난해 11월 시진핑 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회담 이후 중국이 대미 관계를 ‘관리 모드’로 바꿨다”며 “그와 동시에 미국의 동맹국·우방국들과의 관계도 좀 더 유화적으로 가져가야겠다는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와 서부 샌디에이고·샌프란시스코 동물원에 새로 판다를 보내주기로 하면서 ‘판다 외교’를 복원한 것이 상징적인 장면이다.

미국 동맹·우방국에 대한 중국의 태도도 달라졌다.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복원된 지난 5월, 시 주석은 5년 만에 유럽 순방에 나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과 회담했다. 7월에는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일본과 한국을 연달아 방문해 중·일, 한·일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각각 4년 반과 2년 7개월 만에 복원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19일엔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중국으로 초청했다.

외국에 공격적인 발언을 일삼던 전랑외교관들도 이선으로 후퇴했다. 중국은 전랑외교의 선봉에 섰던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을 지난해 1월 변계해양사무사 부사장이란 낮은 직위로 이동시켰다. 윤석열 정부와 부딪혔던 싱하이밍 전 주한중국대사도 예상보다 이른 지난달 초 귀국시켰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일시적 ‘전술 수정’일 뿐, 근본적 ‘전략 변경’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시 주석은 지난해 12월 외교 분야의 최고위 회의인 중앙외사공작회의를 소집해 “강국 건설, 민족 부흥의 위업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는 데 더욱 유리한 국제 환경을 조성하고, 견실한 전략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비공개 회의석상에서는 중국의 입장을 과거보다 더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며 “국가적 이미지 관리를 위해 방법을 바꿨을 뿐, 대내적 환경이 좋아지면 언제든 전랑외교를 다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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