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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북·중·러 위협에 대응… 美 ‘비밀 핵전략’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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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지난 3월 새 지침 승인

“中 핵탄두, 美·러 맞먹게 될 것”

조선일보

지난 2019년 10월 1일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열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중국이 자체 개발한 극초음속 미사일 DF(둥펑)-17을 실은 군용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 DF-17은 핵무기를 탑재, 마하 10 속도로 비행한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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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급격한 핵(核) 전력 확대에 초점을 맞춰 새롭게 조정된 핵 억제 전략을 올해 초 승인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0일 보도했다. 중국 핵무기의 규모와 다양성이 향후 10년 안에 미국·러시아와 맞먹는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미 국방부의 전망에 따른 조치다. 바이든이 지난 3월 서명했다는 새 핵 운용 지침은 중국이 최근 급격히 밀착 중인 러시아·북한과도 협력해 핵 위협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에 따르면 바이든이 새로운 ‘핵 운용 지침(Nuclear Employment Guidance)’에 서명한 것은 지난 3월이다. 약 4년마다 개정되는 이 지침은 전자 문서 형태의 사본이 존재하지 않고, 군 수뇌부와 국가 안보 관련 소수의 고위 관리들에게 인쇄본만 공유될 만큼 극비로 분류된다고 한다. 새 지침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NYT는 중국이 ‘2035년까지 핵탄두 1500기를 배치한다’는 미 국방부의 예상치를 기준으로 전략이 수정됐다고 전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중국의 핵탄두가 2014년 250기에서 올해 초 500기(총보유량 기준)로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고 지난 6월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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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상훈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와 빠르게 가까워지는 가운데 북·중·러의 ‘핵 공조’가 가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새 지침엔 반영됐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핵 규모를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NYT는 “현재 북한이 6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원료도 비축했다고 당국자들은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핵 전략 조정은 냉전 종식 이후 30년 가까이 계속돼 온 핵 감축 기조가 퇴조하고 세계가 핵 경쟁의 시대로 재진입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이뤄졌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정당 강령(정강)에 4년 전 대선 때까지는 있었던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담지 않았다. 북한을 ‘핵 없는 나라’로 되돌리겠다는 목표가 그만큼 실현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조비연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과 중국뿐 아니라 중동에서도 핵 확산 조짐이 있고 미국이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도 노후 핵무기 현대화에 나서는 상황”이라며 “지금 ‘핵 도미노’의 티핑포인트(변곡점)에 있는 세계 질서가 결국 핵 다극 체제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냉전 이후 ‘핵 없는 세상’을 지향하던 주요국들이 체결한 핵 감축 협정은 대부분 유명무실해져 핵 확산 기조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9년까지만 해도 ‘핵 없는 세상’을 거론했지만 이제 이 목표는 너무 멀어졌다”며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핵 위협에 핵 감축 기조를 유지해온 미국에서도 핵 증강 전략 수립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북한 등 통제권을 벗어난 핵 개발국이 늘어난다는 점은 더 큰 부담이다. NYT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 만난 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리라고 예측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북한의 확장되는 (핵) 무기고가 이론적으로는 모스크바(러시아)·베이징(중국)의 위협 수준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크다”고 했다. 앞서 오바마 행정부에서 특별고문을 지낸 로버트 피터스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지난달 발표한 ‘차기 정부를 위한 핵 태세 검토’ 보고서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이 고도화하고 있어 한·미·일에 중대한 피해를 줄 위협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SIPRI는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총 90기의 핵탄두를 만들 충분한 핵열 물질을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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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핵 공격 대응 훈련’ 지상작전사령부 방문 - 윤석열 대통령이 을지 자유의 방패 연습(UFS) 3일 차인 21일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전투작전본부를 찾아 한미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이번 UFS에서는 북한의 핵 공격 상황을 가정한 대응 시나리오 훈련이 처음으로 포함됐다.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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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PRI가 집계한 국가별 핵탄두 보유 현황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북한·중국뿐 아니라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또한 핵탄두 보유량을 일제히 늘리고 있다. 이 기간 중국의 핵탄두 보유량은 두 배 수준이 됐고 북한 보유량은 5~6배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SIPRI 댄 스미스 국장은 “냉전 시대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 무기가 해체되면서 전체 세계 핵탄두 총량은 계속 감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가용(可用) 핵탄두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반핵 단체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핵무기 투자 규모는 2020년 726억달러에서 매년 증가해 지난해 914억달러(약 122조원)를 기록했다. 각국은 핵탄두 자체뿐 아니라 장거리 미사일, 전략 핵잠수함을 비롯한 발사 수단의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핵 개발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것과 반대로 이를 통제할 국가 간 협정은 힘을 잃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9년 옛 소련과 맺었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탈퇴했다. 1987년 미국과 구(舊)소련 양국이 상호 선제공격용 중·단거리 미사일을 감축하기로 약속해 냉전 종식의 상징처럼 통했던 조약이다. 1968년 체결된 가장 오래된 핵 비확산 협정으로 191국이 참여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최근 두 차례 연속 합의문 채택에 실패했고, 목적을 불문하고 핵무기 관련 실험을 금지하자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은 미·중이 비준을 거부해 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러시아 간 양자 협정으로 양국이 배치한 핵탄두 수를 각각 1550기로 제한하는 내용의 뉴스타트는 그나마 아직 ‘공식 파기’는 안 된, 마지막 남은 핵 협정으로 꼽히지만 수명이 다했다는 평가가 많다.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위협해 온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파기를 선언하면서 협정이 공식 만료되는 2026년 2월에 다시 연장될지가 불투명해졌다.

조비연 연구원은 “미·러 사이에 유일하게 남은 뉴스타트가 이미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2026년에 연장하거나 새롭게 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 “지금 조약을 새로 만든다면 핵 전력이 상당해진 중국과 북한 등까지 포함한 다자 합의가 돼야 하는데 양자 합의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훨씬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군축 협상에는 기존 5국(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이 모두 참여해야 하는데 러시아가 비협조적이고 중국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제는 냉전 시대처럼 미국과 러시아의 양자 관계도 아니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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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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