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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공감]젊은 대민 공무원들의 죽음, 이제는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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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이 아프다. 특히 저년차 공무원들은 낮은 임금, 과도한 업무, 악성 민원으로 인한 피로와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것은 대민 업무를 맡고 있는 지자체 공무원, 교사, 경찰 등의 소진이다.

작년 말 개최된 ‘산재 자살 현황 국회 토론회’에서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용혜인 의원실은 공무원과 군인의 자살 순직 신청건수가 지난해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직장갑질 119는 늘어나는 교사 자살 또한 추이를 주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두 주 사이에 여러 명의 경찰관이 과다한 업무가 원인으로 보이는 질병 또는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던 대민 공무원들의 좌절과 떠남은 그 자체로 우리를 안타깝고 슬프게 한다. 더하여 이들이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없다면 교육, 행정, 치안 등 공공서비스의 질이 저하되고 안전망도 약화되어 누구도 안녕하기 힘든 사회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개인이 자신의 정신건강을 돌보고, 직장 차원에서 상담 또는 휴가를 좀 더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이미 심각해진 공무원들의 소진과 우울을 해결하기 힘들다.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각 직역 기관장과 상급 관리자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직무시스템과 조직문화를 빠른 속도로 대폭 바꾸어가는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공무원 리더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하며 몇 가지 제언을 드리려 한다.

첫째, 신입 공무원이 문화에 적응하고 일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시스템과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빠른 부서 순환과 자주 바뀌는 정책으로 인해 신입 공무원에게 어렵고 기피되는 직무가 떠맡겨지는 경우가 많다.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인재에게 그에 걸맞은 준비된 교육과 훈련이 아닌 중압감과 고생만 경험하게 하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처럼 영리하지 못한 처사이다. 제대로 배우고 자란 인재들이 조직에 오래 남아 든든한 기둥이 될 것이다.

둘째,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의 욕구는 더 다양하고 민감해졌다. 국민들이 더 많은 것을 궁금해하고 섬세한 업무 처리를 원하다보니, 공무원들이 감당하는 업무의 양과 복잡성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공무원의 수와 업무시스템, 공무원에 대한 보상은 이러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상급자들이 사건 해결 건수 등 결과 중심으로 구성원을 평가하고 실적 채우기를 종용하면 해당부서의 소진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사회의 변화를 고려하여 공무원 인력을 계획하고, 업무의 양과 기준을 책정하며, 과정 중심의 평가기준으로 이행해야 한다.

셋째, 과도한 업무부담이나 악성민원 담당 등 한계를 넘어서는 상황에 처한 구성원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도울 것이라는 기관장과 상급자의 의지와 함께, 이러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한계를 넘는 상황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누가 어디까지 책임지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무엇까지 포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약속이 필요하다. 조직이 위험에 처한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구성원은 떠나갈 수밖에 없다.

공무원 조직의 기관장과 상급 관리자들 또한 과로와 중압감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럼에도 사회와 공무원 조직의 존속과 유지를 위해 리더의 결단과 실천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에도 묻고 싶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새롭고 빠른 것, 돈을 많이 버는 일에만 환호하고 있지 않은지. 공동체의 안녕은 유지와 돌봄에 달려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유지엔 비용이 든다는 것을 기억하는지를 말이다. 그간 공무원들이 제공한 유지와 돌봄에 대해, 우리는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어떻게 감사해왔는가.

경향신문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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