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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 (일)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동원' 전시 급히 공개한 일본… 상설 전시는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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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도 아이카와박물관 직접 가 보니]
임시로 서둘러 제작, 쉽게 철거될까 불안
'강제 노역·동원' 표현은 볼 수 없는 전시
"독립 전시시설 필요… 내용도 추가돼야"
한국일보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향토박물관이 28일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동원 관련 전시 시설을 새롭게 설치하고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사도=류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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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고용자 책임하에 조선총독부의 인허가를 받은 뒤 노동자를 채용하는 구조였다."

28일 일본 니가타현에 위치한 '아이카와향토박물관' 내 한 전시실 패널에는 이러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일본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한국과 설치하기로 합의한 아이카와향토박물관 내 조선인 노동자 강제노역 관련 전시 공간이었다. 7년 후에야 한국 정부와의 약속을 이행했던 '2015년 군함도(하시마) 논란'과 비교하면 일본 태도에 진전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할 법하다. 그러나 '강제성' 표현을 굳이 피하면서 상대적으로 일본에 유리하게 꾸몄다는 느낌이 매우 짙었다. 특히 상설 전시 시설로 유지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니가타현서 3시간 이동해야 나오는 박물관


이날 기자가 직접 찾은 아이카와향토박물관은 인구 약 5만 명에 불과한 작은 시골 마을, 사도시 아이카와 사카시타마치에 위치해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어려웠다. 사도광산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꼽히는 기타자와 지구 부유선광장 옆에 위치해 있지만, 니가타현에서 배를 타고 3시간 정도 이동해서야 박물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반인에게 이날 처음 공개된 박물관 내 3층 D전시실 제목은 '조선반도(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곳에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노동자 출신지 △아이카와광산 노동자의 생활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노동자의 전시 중 가혹한 노동 환경 등 3개 패널을 설치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들의 열악했던 현실이 설명돼 있었다.
한국일보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향토박물관이 28일 관내 3층 D전시실에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 내용을 전시했다. 사도=류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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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작업에 동원된 사실은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됐다. "전시 중 국가총동원법이 1938년 4월에 공표, 이듬해 조선반도에 징용(령)이 도입", "조선총독부가 민간 고용자들에게 신청받은 뒤 지방정부를 통해 실시", "조선인 출신 노동자는 1,519명이었고 이 가운데 1,140명은 미지급된 임금이 있다는 문헌이 있다"는 내용 등이다. 조선인 이름과 번호가 적힌 '담배 배급 대장'을 전시해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1945년 6월 20일 조선인 노동자 기숙사에서 7명이 도주해 3명이 투옥됐다는 기록도 전시물에 담겼다.

조선인들이 일본인보다 가혹한 환경에서 근무한, '차별'의 역사도 알 수 있었다. 착암(바위에 구멍을 뚫는 작업), 지탱, 운반 등 갱도 내 위험한 작업은 대체로 조선인들 몫이었다. 운반 작업을 한 조선인은 294명으로 일본인(80명)의 3배를 훨씬 웃돌았다. 조선인 노동자를 폄훼한 사료도 전시됐다. 사도광산관리소는 조선인 노동자 관리 보고서를 별도로 작성하며 "기능적 재능이 매우 낮고 연구할 마음이 없다"고 기술했다.

'군함도 약속 불이행' 전력 있는 일본

한국일보

28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향토박물관 1층에 사도광산 역사를 표현한 도표가 전시돼 있다. 사도=류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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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한일 정부 합의로 어렵게 마련된 '조선인 강제노역' 전시 시설이 계속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이 요구한 강제노역, 강제동원 표현이 전시에 담기지 않아 '한국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일본을 덜 압박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일본 정부가 전시 시설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는 부분이다. 마침 한일 정부가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자'고 합의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한일 정부가 전시 시설에 '강제노동' 문구를 쓰지 않는 대신 당시 생활상을 설명하기로 사전에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철거가 쉽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에도·메이지 시대 광산 역사를 설명한 1층 시설과 달리, D전시실은 모두 임시 패널로 꾸몄다. 양국 정부 협의 후 세계유산 등재에 맞춰 서둘러 작업한 탓인데, '다시 꾸미겠다'는 게 일본 측 설명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미 '약속 불이행' 이력이 있다. 2015년 7월 군함도를 포함해 23곳의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면서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알리는 시설을 만들겠다"고 공표했지만, 7년이 지나서야 도쿄에 설치한 것이다.

게다가 '강제노역' 표현도 쓰지 않았다. 강제노역 사실을 알리기 위해 활동하는 고스기 구니오 전 사도 시의원은 "과거 조선인 동원 사실을 전시한 점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점은 불만스럽다"고 비판했다.

"전시로 인정했지만 강제동원 표현 안 쓴 점은 문제"

한국일보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향토박물관이 28일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 관련 전시 시설을 설치하며 새롭게 만든 팸플릿. 3층(팸플릿에는 2층으로 표기) D전시실을 '조선인 관련 내용'이라고 표시했다. 사도=류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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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전시실(A~E) 중 분리된 공간에 꾸민 점도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이곳은 원래 탄광학교 관련 내용을 전시한 곳이었다. 조선인 노동자 내용이 급하게 들어오면서 기존 전시 내용은 2층에 임시로 설치됐다. 설치 장소와 내용이 언제든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압박해 상설 전시 시설인 '전용 건물'을 짓게 하고, 전시 내용도 계속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 연구위원은 "조선인 강제동원을 설명하는 별도의 독립적 건물이 필요하고, 이를 한국이 일본에 계속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정책실장도 "당시 피해자 증언 기록을 포함해 새로운 자료가 나오면 이를 (모두) 전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도= 류호 특파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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