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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달라진 북한과 김정은…트럼프 ‘야구 보러 가자’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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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그래픽/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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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풀고 야구 경기나 보러 가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가 툭 던졌다.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 친한 친구가 아니더라도 야구 경기를 같이 보러 가자는 말은 잘 지내보자는, 그러고 싶다는 말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대통령이던 시절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미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직후인 지난 20일 첫 유세에서 이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그 며칠 전 공화당 전당대회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나는 북한 김정은과 잘 지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과연 트럼프 후보가 미 대통령이 된다면 김정은과 야구 경기를 보러 가게 될까?







북 주민 먹고도 남는 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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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안남도 순천에 비료공장이 건설되기 이전인 2018년의 모습(위 사진)과 2022년에 순천린비료공장이 건설된 이후의 모습. 구글 어스 갈무리, 서재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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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트럼프와 김정은이 마지막 조-미 정상회담을 한 뒤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세상은 많이 변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많이 변했다. 변화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가 ‘야구 관람’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조선은 하노이 정상회담이 성공했다면 완전히 폐기할 수도 있었던 영변의 핵시설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해 핵탄두 생산량을 늘렸다. 다종다양한 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핵미사일 사용 훈련을 거쳤다.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획기적인 질적 전환이 이뤄졌다. 코로나 기간 경제 제재 때보다도 철저하게 국경을 봉쇄한 상태에서 ‘자립경제’를 강화했다.



주민의 삶에 직결된 식량 생산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조선이 극심한 식량 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말 대규모 기아 사태가 충격적이었고, 2000년대 농업이 붕괴된 모습이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은 그동안 여러 조처들을 해서 식량 생산을 복구했다. 조선의 식량 수급 상황을 오랫동안 추적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이미 2021년 식량 생산량이 560만t이라고 추정했고 그 이전 10년의 연간 평균 생산량이 570만t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이는 과거 1980년대의 생산량을 넘어서는 양이고, 이북 주민이 먹고사는 데 필요한 540만t을 충족시키고 남는 분량이다.



2022년부터는 유엔 기구의 방북이 이뤄지지 않아 북의 식량 생산량을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북의 언론은 작년 풍작을 이뤘다고 자랑했고 올봄에는 보리와 밀 생산량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확인할 수 있었던 시기의 곡물 생산량을 뛰어넘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부분은 비료 투입량이다. 현대 농업에서 비료량은 곡물 생산량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인데 2018년 중국에서 26만t을 가져왔던 조선의 비료 수입량은 2022년에는 1만3천t까지 떨어졌다. 사실 비료를 거의 수입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비료를 어디서 조달해서 농업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일까?



답은 국내 생산에 있다. 과거에 조선은 농사에 필요한 화학비료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었으나 1990년대 들어 원료난과 설비 낙후 문제 때문에 비료 생산시설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 석유화학의 중간원료인 나프타를 수입해 비료를 생산하던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는 1993년부터 생산이 중단되다시피 했고, 최대 규모 화학비료공장인 흥남비료련합기업소도 1990년대 후반 이후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중국이나 한국에서 비료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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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흥남비료련합기업소 메탄올 생산공정이 들어서기 전인 2009년 모습(위 사진)과 들어선 이후인 2019년의 모습. 구글어스 갈무리, 서재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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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그대로 보는 ‘트럼프의 눈’





그러나 조선은 김정일 시대부터 대대적인 개건 사업에 들어가 노후한 시설을 들어내고 거의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는 수준의 공사들을 벌였다. 그 결과 수입 원료에 의존하지 않은 채 북에 풍부한 무연탄과 갈탄을 가스화하여 화학비료를 생산하는 시설들을 대규모로 현대화했다. 흥남은 2007년부터 실질적으로 가동을 재개했고, 남흥은 2010년 조업을 개시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이러한 공정을 확장하고 설비를 현대화했다. 흥남에서는 질소비료 생산능력 확장 공사를 2017년에 이어 2020년에 진행했고, 2020년 9월에는 수경재배용 영양액 비료 생산공장을 건설했다. 남흥에서는 2019년부터 회망초를 원료로 하는 탄산소다 생산 공정을 개건했고, 대형 압축기 및 전동기 등을 신설하여 비료 생산능력을 확장했다. 구글 어스에서 흥남비료련합기업소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은 시대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순천린비료공장이다. 북의 다른 화학비료 공장들이 질소비료를 생산하는 반면에 인(린)비료 생산은 미비했다. 곡물은 특성상 인이 부족하면 제대로 된 결실을 맺지 못하기 때문에 인비료의 결핍은 중요한 문제였다. 이 병목현상을 풀기 위해 순천석회질소비료공장을 철거하고 그 부지에 인비료 공장을 신설했다. 이 공장은 원료 투입부터 제품 포장까지 전 과정이 자동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 관련 설비를 설치하여 생태환경적 산업설비 모델을 확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준공식에도 불구하고 생산은 원활하지 않았다. 양산 과정에서 원료와 흑연 전극 생산 등에 있는 기술적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3년에 걸쳐서야 해결이 된 것으로 보인다. 2023년에야 순천린비료공장이 “지금 맡겨진 린비료 생산계획을 수행 중”이란 보도가 나온 것이다. 비슷한 시기 강원도의 안변린비료공장이 생산 소식을 알린 것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2025년 트럼프와 김정은은 야구 경기를 보러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변화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하며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하고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고 “우리가 다시 만나면, 나는 그들과 잘 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풍선으로 북을 자극하는 한편 ‘자유주의 북진 정책’을 내세우며 흡수통일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이 오히려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더 좋은 미래로 한걸음 나갈 수 있다.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방문학자로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에 머물고 있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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