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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동아시아 영토·영해 분쟁

中 “남중국해 넘으면 구금”… 필리핀 “평소대로 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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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필리핀 영해분쟁 고조

조선일보

지난 4월 30일 필리핀 해양경비대 소속 바가케이호가 중국과의 분쟁지인 남중국해의 스카버러 암초 인근 해역에서 중국 해안경비대 소속 경비함 두 척이 쏘는 물대포를 맞고 있다./필리핀 해안경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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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필리핀이 영유권을 다투는 남중국해에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진입하는 외국인, 외국 선박을 구금하자 필리핀은 대통령이 앞장서서 전쟁 가능성을 말할 정도로 반발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필리핀이 미국 주도 인도·태평양의 반중(反中) 연대에 확고하게 편입되면서 돌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중화권 매체에 따르면 로미오 브라우너 필리핀군 참모총장은 14일 필리핀 어민들에게 중국의 ‘남중국해 진입 외국인 구금 조치’를 신경 쓰지 말고 남중국해의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계속 조업하라고 촉구했다. 브라우너 참모총장은 “두려워하지 말고 평소처럼 행동하라”면서 “어민들을 보호할 다양한 조치를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해경은 17일 “필리핀 보급선 한 척이 중국 난사(南沙) 군도(스프래틀리 군도) 런아이자오(세컨드 토머스 암초) 인근 해역에 불법 침입해 법에 따라 통제 조치를 취했다”면서 “필리핀 선박이 정상적으로 항행하는 중국 선박에 고의로 위험하게 접근해 접촉 사고[擦碰]를 유발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달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연례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어떤 필리핀인이라도 중국의 고의적 행위로 사망하면 레드라인을 넘은 전쟁 행위로 여겨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수뇌부의 강경 발언은 지난달 15일 중국해경국이 ‘해경기구 행정집법 절차 규정’을 발표한 뒤 잇따라 나온 것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중국 해경은 이달 15일부터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해역에 들어가는 외국인과 외국 선박을 최장 60일 동안 구금할 수 있다.

특정 국가를 가리키지 않았지만 필리핀을 겨냥한 조치로 해석됐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말레이시아·베트남·브루나이 등 동남아 국가들과 분쟁 중이지만, 규모와 강도 면에서 필리핀과는 차원이 다른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국제사회에서 ‘남중국해’로 통칭하는 바다를 자국 영해라는 개념이 담긴 ‘서필리핀해’로 부른다. 중국 해경선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남중국해 내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 부근에서 필리핀 선박을 향해 반복적으로 물대포를 발사했는데, 앞으로 ‘구금’까지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강경 조치에 필리핀은 맞불을 놨다. 중국의 조치 시행 당일 필리핀은 남중국해에 있는 필리핀 팔라완섬 서쪽 해역의 대륙붕 경계를 연장하고, 이 해역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달라고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신청했다.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바다에서 필리핀의 ‘바닷속 땅(대륙붕)’을 확장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CLCS는 각국의 대륙붕 경계를 심사해 권고하는 유엔 산하 기구다. 앞서 필리핀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 남중국해의 90%가 자국 바다라는 중국 주장을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걸어 2016년 이긴 경험이 있다. 이 소송은 강제 이행 수단이 없어 실익은 없지만,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타격을 입혔다. 중국으로서는 필리핀의 행보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미국의소리(VOA)는 “필리핀이 남중국해 주권 보호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수를 썼다”고 평가했다.

필리핀은 각종 군사 조치도 하고 있다. 프랑스의 해군 전문지 네이벌뉴스는 필리핀이 루손섬 서해안 잠발레스주의 해군기지에 미사일 기지를 구축 중이라고 전했다. 이 기지에서 운용할 브라모스 미사일은 인도·러시아가 공동 개발한 대형 초음속 미사일로, 사거리가 290∼300㎞에 이른다. 유사시 약 250㎞ 떨어진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 주변의 중국 선박을 타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필리핀군은 또 중국에 맞서 스카버러 암초 등지에 선박을 늘려 배치하고, 잠발레스주 인근 수비크만 국제공항에 공군기지를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필리핀이 적극적으로 중국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미국이라는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영토를 1제곱인치도 외세에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해 온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2022년 6월 취임 직후 전임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친중 정책을 모두 폐기하고 강력한 친미 노선으로 전환했다.

필리핀군은 2022년부터 미군과 남중국해, 대만과 필리핀 사이 루손해협 등에서 ‘카만닥’ 연합 훈련을 시작했고, 미국과 하는 합동 군사훈련 ‘발리카탄’ 규모도 늘리고 있다. 지난 5월 열린 발리카탄 훈련 때는 중국이 건조한 퇴역함을 남중국해에서 격침하고, 북부 해안에서는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등을 동원해 적의 상륙을 격퇴하는 실전 훈련도 했다. 중국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남중국해에서 대만과 거리가 가장 가까운 필리핀이 대만 주변에서 늘어나는 중국의 군사 활동에 위기를 느끼고 미국과 밀착하는 속도를 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력한 친미 노선으로 갈아탄 필리핀을 미국은 새로운 안보 동맹으로 대우하고 있다. 우선 14일 G7(7국)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해안 경비대와 해상 민병대의 위험한 행동과 각국 공해 항행의 자유에 대한 반복적 방해를 반대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필리핀의 뜻이 반영되도록 미국이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넣은 결과라는 얘기가 나온다. 미 국무부는 중국이 ‘남중국해 진입 외국인 구금’ 조치를 강행할 경우 긴장을 고조시키고 역내 평화와 안보를 위협한다며 중국을 비판했다. 앞서 미국은 4월 워싱턴에서 미국·일본·필리핀 3자 정상회담을 연 데 이어 5월에는 하와이에서 미국·일본·호주·필리핀 4자 국방장관 회담을 열었다.

이런 움직임에 중국은 반발하고 있다. 장샤오강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필리핀이 ‘불장난’을 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 국영 CCTV는 지난 12일 최신인 055형 미사일 탑재 구축함 3척이 남중국해에서 훈련에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단일 훈련 임무에 중국이 최신 구축함 3척을 한꺼번에 배치한 것은 중국과 필리핀의 긴장이 높아진 상황을 반영한다고 했다. VOA 중국판은 “중국이 지난 20여 년 동안 필리핀에 투자를 지속하며 공들였지만, 경제를 옥죄 정치를 움직이는(以商逼政) 시도는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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