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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공군 ‘Bomb양갱’, 코레일 ‘서울역 ASMR’… B급 감성 잡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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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엄근진에서 탈피하고

재미 좇는 공공기관들

달디단 ‘밤(栗)양갱’이 쓰디쓴 ‘Bomb(폭탄)양갱’이 됐다. 군복 입은 영상 속 청년은 ‘흐르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다’며 그야말로 ‘어렵게’ 발사 버튼을 누른다. 원작 노래에 경쾌한 밤양갱~♬ 가사가 등장할 때마다 미사일이 투하된다. 적군에게 “양갱은 모르겠고 Bomb만은 확실히 안기겠다”는 강력한 의지. 공군(ROKAF)의 ‘밤양갱’(비비) 패러디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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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은 '밤양갱'(비비)을 패러디한 ‘Bomb(폭탄)양갱’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공군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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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은 '밤양갱'(비비)을 패러디한 ‘Bomb(폭탄)양갱’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공군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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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근진’(엄격·진지·근엄)의 대명사 공공기관이 ‘B급 감성’ 공략에 나섰다. 정장 차림에 칼각, 미동도 없이 사무실에 앉아 있을 것만 같은 공무원들의 ‘먹방’ ‘눕방’ ‘춤방’에 “B급이 아니라 C급 아니냐” “공공기관 또 나 빼고 재밌는 거 하네” 말까지 나온다. 공군 유튜브에 올라온 ‘Bomb양갱’ 영상은 2개월 만에 조회 수 198만회를 기록했다. 평균 조회 수(10만회 안팎)보다 20배 가까이 높다. 반응은 뜨겁다. “기획자에게 포상휴가를 줘야 한다” “달디단 광기가 느껴진다” “영상은 웃기지만 공군은 우습게 보이지 않는다”는 댓글들.

코레일은 ‘서울역 ASMR’(소리로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 영상으로 화제가 됐다. 화장실 변기통이나 에스컬레이터 등 서울역의 온갖 사물을 손톱으로 두드리는 식이다. 2~3개월에 한 번씩 이런 영상을 올린다. 최근에는 유니폼을 입은 코레일 직원이 ‘심신을 안정시켜 주겠다’며 열차 바퀴를 숟가락으로 두드리거나 안내 방송할 때 쓰는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고 “에이, 에스, 엠, 알…”을 속삭이는 모습이 담겼다. ‘급행 열차’를 패러디해, 제목도 ‘B급행’이다. 기관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쩍벌 댄스’를 추며 “최고 속도 320㎞/h”라고 KTX 청룡을 홍보하는 짧은 영상은 조회 수 300만회 가까이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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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은 ‘서울역 ASMR’(소리로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 영상 등으로 화제가 됐다. /코레일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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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어 보이지만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의미 없는 ‘밈’(meme)을 기관에 맞게 재해석하는 건 기본이다. 친근함을 노리는 동시에 신뢰감을 주려는 전략. 소방 홍보 채널인 유튜브 ‘소방관 삼촌’ 채널은 틱톡에서 유행하는 짧은 영상을 주로 올린다. 그가 소방관 근무복을 입은 채 승용차에서 내려 앞을 보지 않고 춤을 추며 나아가다가, 기둥에 부딪혀 넘어지는 14초짜리 영상은 조회 수 40만회를 기록했다. 세계적으로 유행한 흑인 청년의 댄스 영상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런데 원본 영상과 달리, 마지막에는 ‘교통사고 원인 1위 전방 주시 태만. 졸음 운전 주의. 운전 중 휴대폰 사용 금지’라는 문구가 나온다. 땅에서 스케이트를 타듯 양발을 번갈아 움직이며 나아가는 ‘슬릭백 댄스’를 추다 빙판길에서 미끄러지는 영상에는 ‘겨울철 빙판길, 안전사고 주의’를 첨부했다. 역시 틱톡에서 수백만 회 재생산되며 인기를 끈 밈이다.

영상만이 아니다. SNS(소셜미디어) 문구도 적극 활용한다. 공식 계정인지 개인 계정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 국립공주박물관은 지난해 키덜트 성향이 짙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공주들아, 맞팔(서로 계정을 팔로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문구와 함께 ‘공주(princess)’ 콘셉트 마케팅을 폈다. 고양시청은 트위터 계정에 ‘집에 가고 싶음ㅋ’ ‘시장님. 칼퇴 아니고 정시 퇴근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올리기도 했다.

◇충주맨이 쏘아 올린

공공기관이 진지함 탈피에 나선 이유는 젊은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영상이나 문구는 기관의 홍보 담당자가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해 올린다. 원조는 충주시의 유튜브 채널 ‘충TV’. ‘충주맨’으로 불리며 유튜브 관리를 담당하는 김선태 주무관은 일명 ‘관짝춤(관을 들고 추는 춤)’으로 유명해진 뒤 책상 위에 발을 올리고 누워서(!) 시민들의 궁금증에 답하는 눕방 영상 등으로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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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 금천구 안양천 옆에서 열린 ‘금천구청장배 건강달리기 대회’는 '수육런'으로 소문이 나며 참가자 950명을 모집하는데 10만명 넘게 신청자가 몰렸다. /온라인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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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은 적은데 홍보 효과는 기특하다. 지난달 서울 금천구 안양천 옆에서 열린 ‘금천구청장배 건강달리기 대회’는 참가자 950명을 모집하는 데 10만명 넘게 몰리며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5㎞ 혹은 10㎞를 달리는 이 대회는 참가비 1만원을 내면 보쌈·두부김치·막걸리 등을 무제한으로 제공하는데, 온라인에서 일명 ‘수육런’이라고 입소문을 타며 인기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늦게 결승선에 들어가면 고기가 없다’는 소문이 돌며 10㎞ 코스보다 5㎞ 코스가 먼저 마감됐다고. 금천구육상연맹 관계자는 “매년 대회를 열지만 SNS로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본질인 정책을 제대로 알릴 수 있겠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홍보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은 결국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며 “국민을 내려다보는 곳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접근 방식으로 세금 낸 보람을 느끼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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