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은행 기업대출 상담창구.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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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10곳 중 3곳은 부실 위험이 큰 'C학점' 이하의 신용 성적표를 받아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비율은 최근 5년 새 1.7배로 빠르게 커졌다.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로 꼽히는 중소기업의 연체·파산이 증가하면서 경제 전반으로 위험이 파급될 우려도 커졌다.
11일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나이스(NICE)평가정보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3월말 기준 신용등급 C등급 이하(D(부도)~CCC+)를 받은 중소기업 비율은 27.45%에 달했다. B등급 이상이면 투자 적격 판단인 반면, C등급 이하면 거래·신용 위험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거나 사실상 부도 상태라는 의미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말(15.8%)의 약 1.7배 수준이다. 코로나 유행이 한창이던 2021년 말(21.97%)과 비교해도 경고음이 커졌다. "코로나 유행 때보다 훨씬 어렵다"(안산 소재 전력기기 업체 사장)는 중기의 하소연이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김경진 기자 |
이들 중기의 평균 신용등급은 올 3월 기준 15.15(B-~B0)로 집계됐다. 2019년부터 14점대(B0~B+)를 지켰지만, 약 6년 만에 한 단계 후퇴했다. 해당 숫자가 높아질수록 등급이 하락한다는 걸 의미한다. 나이스평가정보 측은 "경영 능력, 영업 위험 같은 비재무적 요인과 기업 대표자의 신용도 하락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에선 대체로 신용등급 가운데에 있는 BB+를 중소기업 대출의 마지노선으로 본다. 이를 충족하는 중기 비중은 올해 들어 6.98%에 그쳤다. 2019년 말 8.9%보다 훨씬 낮다. 은행 대출받을 여력이 있는 업체가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특히 신용등급은 여신 심사뿐 아니라 조달청 같은 공공 입찰, 대기업 발주 등에도 쓰이는 만큼 등급이 하락한 중기는 일감 구하기도 힘들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용 부실에 따른 '이중고'가 가중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중기의 어려움은 대기업과 비교하면 훨씬 두드러진다. C등급 이하를 받은 대기업 비율은 2019년 말 8.46%에서 올 3월 8.95%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팬데믹 이후 복합위기를 잘 버티면서 신용등급을 방어한 셈이다. 이종배 의원은 "중기 신용등급이 대기업보다 훨씬 빠르게 내려가는 건 좋지 않은 신호"라면서 "이런 추세면 많은 중기가 대출뿐 아니라 경영 전반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만큼 체계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경진 기자 |
여기엔 코로나19 파고에 이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삼각 파고'가 닥친 영향이 크다. 물가 상승과 소비 위축, 환율 불안 등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중기 실적은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자금 사정 악화→신용등급 하락→투자 활동 축소→연체율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까지 닥쳤다.
서울의 온라인 광고 대행업체 A사는 해마다 매출이 늘던 유망 기업이었지만, 코로나19로 운명이 바뀌었다. 광고 수주가 대폭 줄면서 운영비 부족에 빠졌고, 결국 정책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팬데믹이 끝났지만 허리띠를 졸라맨 광고주들은 외주 대신 자체 광고팀 운영으로 방향을 틀었다. 출혈 경쟁이 심해진데다 은행 금리까지 오르면서 기존에 받은 대출 이자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결국 16억원의 빚을 떠안은 대표 B씨(45)는 최근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A사처럼 연체·파산에 내몰리는 중기는 빠르게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월 은행의 중기 원화대출 연체율(한 달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7%로 2022년 2월(0.32%)의 두 배를 넘겼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 1~4월 법인파산 신청 건수는 635건으로 2021년(276건)·2022년(296건) 같은 기간의 두 배를 훌쩍 넘겼다. 법조계에 따르면 파산 기업 대부분은 중기로 추정된다.
김도완 변호사(은하수 합동법률사무소)는 "예전에는 회사를 살릴 수 있냐는 문의 위주였다면, 요즘은 그냥 회사를 정리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이러한 중기 사장들에게선 '희망이 안 보인다'는 반응이 공통적"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 시내에 붙은 대출 전단지.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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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체 중소기업은 2021년 기준 771만3895개, 종사자 수는 1849만2614명에 달한다. 한국 경제의 뿌리인 중기 상황이 더 악화하면 대출로 엮인 금융권,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 등도 연쇄 타격이 불가피하다. 김규섭 IBK경제연구소장은 "모든 산업은 연관돼 있는 만큼 중소기업이 신용 위험에 장기간 노출돼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 전체 기업·산업으로 위기가 확산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기 금융 부실이 이어질 경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엮여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몇곳이 도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하청 중기가 흔들리면 대기업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만약 중기가 한꺼번에 무너지면 갈 곳 없는 근로자들이 쏟아지고, 사회 안전망이 악화하면서 정부 재정 안정성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짚었다.
신용등급은 연간 143만~170만개 중기를 대상으로 수익성·유동성 같은 기업 재무제표, 산업 전망·영업 위험을 비롯한 비재무적 지표 등을 종합·평가해서 매기는 성적표다. 알파벳 기호를 활용해 AAA+부터 D(부도)까지 22개 세부 등급을 매긴 뒤 분류하는 식이다. 중기의 전반적인 '체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은행 등 주요 기관에서 활용된다.
정종훈ㆍ이아미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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