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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사설]거부권을 ‘대야 협상권 삼으라’는 윤 대통령의 초법적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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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9일 경기 양주시 회암사지에서 열린 ‘회암사 사리 이운 기념 문화축제 및 삼대화상 다례재’에서 헌등 뒤 합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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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민의힘 수도권·대구·경북 총선 당선인들과 만나 “헌법의 권한에서 여당을 돕겠다”며 “예산 편성권이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적극 활용해 협상력을 야당과 대등하게 끌어올리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수 여당이지만 위축되지 말라”고도 했다. 거부권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으로, 국회에 대한 행정부의 견제 장치다. 하지만 3권분립과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기 위해 가능한 한 자제돼야 한다. 윤 대통령이 여당에 거부권을 대야 협상 카드로 쓰라고 노골적으로 주문하는 것은 초법적 인식이다. 22대 국회에서도 야당과의 대화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거부권을 9차례 행사했다. 임기 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정부 중에서 가장 많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은 야당과 국회를 무시하고, 불통·독주로 일관한 국정운영의 압축판이었다. 4·10 총선에서 윤 대통령이 심판받고 여당 의석이 108석에 그친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여당은 22대 국회에서도 야당의 협조 없이 처리할 수 있는 법안이 없다. 그렇다면 여권이 거대 야당을 존중하고 대화와 설득으로 타협점을 찾는 게 순리이고, 총선 민심에도 부합한다.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 직후 밝힌 ‘정치하는 대통령’의 자세도 그것일 테다. 야당이 추진하는 법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부권으로 압박하고, 국회 입법권을 무력화하려는 것은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다. 헌법 정신에 맞지 않다.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에도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기어이 ‘정치를 포기한 대통령’이 되려는 건지 묻게 된다.

윤 대통령은 21일쯤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10번째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야당은 채 상병 특검법이 재표결에서 부결될 시 22대 국회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함께 재발의한다는 입장이다. 두 특검법은 윤 대통령 자신과 가족이 연루된 사안이다. 거부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여당 의원들에게 어차피 거부권을 행사할 테니, 야당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건가.

민심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 윤 대통령은 총선 참패에도 “국정 방향은 옳다”며 국정기조를 전면 전환하라는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지지하고 의혹도 쌓여가는 특검법을 거부하면 국정과 협치는 앞으로 나갈 수 없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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